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part 1: 돈으로 취향을 찾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취미를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취미'라고 표현했지만 취향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할 듯 하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취향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을 뜻한다. 1~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일을 계속 하다보면 저절로 취향이 생길거라 생각했다. 나의 삶을 온전히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그런 세계가, 나를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은 '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에 파묻혀 점점 흐릿해졌다. 남들이 보면 별거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들도 아주 깊은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해묵어만 갔다. 그리고 그런 해묵은 감정을 떨쳐낼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바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취향을 찾는데서' 시작되었다.
사실 휴학 후 '돈'을 버는 것은 내 계획 속에는 없는 일이었다. 늘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내게 '나중에 뭐해먹고 사나'가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강박증이 있는 나는 휴학을 시작함과 동시에 과외수를 확 늘렸고 심지어 패스트푸드 알바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이 이야기는 조금 더 나중에 풀어가보겠다) 그리고 돈을 벌고, 내가 번 돈을 직접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새로운 활동에 눈을 뜨게 되었다.
처음은 여행이었다. 2학기 종강 후 모종의 이유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나는 충동적으로 생애 첫 홀로 여행을 계획한다. 파란빛 물결을 지닌 부산으로. 그 때는 여행을 잘 즐길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바람에 산산조각나는 수많은 파도를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졌던 기억은 지금도 남아있다. 그래서 거의 매달 여행을 떠나고 있다. 해외든 국내든,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를 여유롭게 바라보는 그 잔잔함과 떨림은 지겨워지지 않는 경험 중 하나다.
두 번째는 뮤지컬이다. 요즘 한창 빠져있는데, 뮤지컬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티켓값이 정말 사악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맨 뒷자리 천장에 붙어봐도 1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비싼만큼 값어치를 한다. 노래로 전달되는 배우의 절절한 감정은 더 짙은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하는 음악도 한 몫한다.
마지막은 훨씬 저렴한 취미인데, 고궁을 산책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 많은 관광지를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외출은 평일에 한다. (세상에 휴학생만큼 좋은 신분은 없다) 요즘은 많이 덥지만 1~2달 전만 하더라도 오전에 고궁을 거닐면 선선한 바람 속에 평화로운 적적함을 느끼기 좋았다. 경복궁부터 덕수궁, 창경궁, 종묘 등 집 주변에 있다면 매일 가고 싶은 곳들이다.
그리고 위의 활동들은 전부 휴학 후 돈을 벌면서 가지게 된 새로운 나의 취향들이다. 어떤 공연이 나에게 잘 맞는지, 경복궁과 덕수궁 중에는 어디가 더 산책하기 좋은지, 여행지로는 도시와 시골 중 어디가 더 좋은지. 하나하나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던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다. 온전히 내만이 계획할 수 있는 시간들을 어떻게 꾸며낼지 고민하는 과정은 삶을 더 괜찮게 만든다. 아직은 모르는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고, 이미 다가온 오늘은 꽤나 즐겁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열거한 모든 활동에는 돈이 필요하다. 혼자 여행을 가면 교통비와 숙박비에 최대한 돈을 덜 쓴는 편이지만 2박 3일 정도의 국내 여행을 다녀오면 몇 십만원은 우습게 깨진다. 뮤지컬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의 외식비와 카페값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대부분의 뮤지컬 공연은 서울에서 진행되고 아쉽게도 난 서울에 살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벌어서 돈을 쓰다보니,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여행갈 때 좋은 호텔에 묵어보고 싶고, 오페라 글라스가 필요없는 앞자리에 앉아보고 싶기도 하다. 아직은 내 힘으로 가기 힘든 아주 먼 어느 이국의 나라가 궁금해질 때도 있다. 무엇이 내 삶을 '아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라고 만들지 경험하는 과정은 내가 멀어지고자 했던 '나 하나 먹여살리기'에 대한 고민으로 다시 이어진다.
하지만 이전의 고민이 막연한 두려움이었다면, 요즘의 고민은 걱정을 넘은 약간의 열정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하다. 하고 싶고 보고 싶은게 많은 삶은 심장이 울리는 내일을 만든다.
그러니 모두들,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