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8

수렁

by 장은혁

어제 글을 안 썼건 못썼건, 내게 그것 때문에 드는 더러운 감정들과, 근데 뭐 쓴다고 거창하게 선언까지 해 놓고서 안 쓴 건 욕먹을 만한 내 잘못이 맞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끝나야 한다. 내 잘못인 걸로 욕먹기. 욕먹기. 더러운 감정이 너무 길어지면 안되는데. 썅.


엄마가 나 늦게까지 자는거 별로 안 좋아한다. 나한테도 일찍 일어나는 게 좋고 일찍 일어나서 부모님이랑 나랑 같이 아침밥 먹고 싶어하는 거 같은데. 그래서 좀 엄마 기분이 눈치가 보인다고 해야되나. 죄책감이 내 목 뒤 빈 공간을 잠식한다. 근데 내가 또 늦게 잔 걸 어떡하나. 이것도 내 탓이다. 내 잘못이다. 욕먹을 건 욕먹고 실수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 시야가 짧았고 그건 내 탓이다. 짧은 순간적인 욕망이 앞섰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잊어버리고 일정을 잡았다. 애초에 죄책감 섞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와의 관계였는데, 또 죄책감.


흐름을 끊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재수하는 동안 멈추지 않고 달려 나가다 보면 어디까지 내 안으로 침강할 수 있는지는 이미 대충 알게 됬으니, 잠깐 바람 좀 쐬자. 이 정신머리로는 뭣도 안된다. 집이라는 공간과, 엄마와 글과 친구와 모든 게 합쳐진 내 방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잠깐 바람 좀 쐬자.


다행히 내 집 주변에는 공장과 논밭이 무더기로 있기 때문에, 논밭이 모인 지하철역 근처에 걸을 만한 곳이 있다. 근데 굳이 그거 생각하진 않고 별생각 없이 일단 발을 움직이긴 했다. 찌뿌둥한 얼굴근육, 피곤해서 평소보다 더 닫기는 눈과 건조한 턱뼈. 손을 모아 물을 받아 그새 내 얼굴에 묵은 더러운 기름들을 떼내는 기분으로 세수를 한다. 기름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기분은 나아진다.


산책 중이다. 15시 34분이다. 모래바람인가 안갠가 아님 내 눈에 뭔가가 묻은건가 논밭이 뿌옇다.












"Saying I'm lost, still

Wondering my cost, still

Hit me then I bruise, 'cause I got nothing to lose

I could tell you that it's just as, real"

- Loyle Carner의 곡 'Still' 중 발췌




또 아직도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아직도 이런 죄책감을 느끼면서 확정 지었던 결론을 다시금 내고 있다는 내 상태가 질린다. 아직도 이러고 있다. 내 생각보다 나는 이런 나를 예상하지 못했나보다. 내 생각보다 나는 더 내게 실망할 것이 남아있었나보다. 아니면 내가 나를 애써 일으켜놓았기 때문에 내가 가진 희망이 나를 다시 수렁으로 이끈 것일까. 추상적으로 말하면 지루해지고 또 말 전달도 안 된다. 나중에 보면 이만치 꼴불견이 없다. 내가 나를 피곤해하는 것도 너무 반복되는 레퍼토리 아니냐? 좀 바껴바. 믿음이 희망에서 절망으로 바뀌었을 때에 다시 희망을 바라는 것도 좀 뻔한 네 습관 아니니? 좀 바껴바.









통로를 벗어난다. 나는 어두운 통로를 벗어나는 중이다. 근데 다시 벗어나기 전에 내가 잊고 가는 거는 없는지, 다시 반복될 이걸 잊지는 않았는지, 다시 이만치, 아래로 빠지지 않고 싶어서, 더 부정적이지 않기 위해서 내가 잊고 가는 게 없는지 확인을 더 하고 가고 싶다. 몸부림을 마지막으로 더 치고 가야만 내가 편할 것 같다. 몸부림을 치며 편안한 공간을 만들다 보면, 언젠가는 침강의 순간들에서 몸부림에 대한 꿈을, 돌아보는 나 자신에 취해서 운명적인 그 순환조차 거슬러버릴 수 있다는 그 허황되고 아주 달콤한 꿈을 계속해서 머금게 되어 고통이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나는 그냥 더 고통스럽기 싫다. 그렇기에 더 고통스러운 것 아닐까. 고통의 순간에서 희망을 상상하기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 희망 말이다. 통로의 벽을 더 보고 가고 싶다. 어두운 통로의 벽에 있는 저 작은 구멍들을 더 구경하고 싶다. 통로를 나가기를 유보하고 지금을 더욱 이대로 보내고 싶다. 지금의 상태로 보전되고 싶다. 안정되고 싶다. 그걸 더욱 바라기에 나는 안정되지 못한다. 안정되고 싶기에 불안하다.












음악을 듣는다. 숨이 막혀오고 목이 매인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어떤 생각의 흐름을 이끌어내고 증폭시키는 촉매라고 할까. 다른 이의, 어떤 자서전의 나열에서 내 결심이 이어질 수 있다. 결심은 좀 어감이 싫다. 무언가를 이뤄야만 할 것 같다. 나는 무언가를 이루지 않고도 내 자신을 다시 찾아나갈 수 있다. 결심이 아닌 변이라고 하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어감 그 어느 것도 아닌 어떤 변이.




"That you'd be back, that you'd never really left

Because love does not lessen by miles

It's not locked out by doors or walls

But reinforced in thought and heart

It cannot be lost like a key or a sock

Or left behind in a box

It is present in each and every breath

And flows deep with every beat and deed

It may not be your presence but it's your essence that remains.

Forever dancing like glitter in our air"

- Loyle Carner의 곡 'Dear Ben' 중 발췌





앨범의 끝. 바람과 새소리,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가 그 뒤를 채운다. 내 마음에 묻은 소리의 얼룩이 있다. 음악은 내게로 전이되어 나의 이야기로 해석되었다. 아직 무표정한 입꼬리와 피곤해 미세하게 떨려오는 눈두덩이. 지하에서 1층으로, 다시 0의 상태로 돌아왔다. 나는 내 몸과 집이라는 공간에 베인 내 흉터의 상상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 아마 벗어나지는 못할 거다. 갖고 살아야 할 것이다. - 그래도 어떻게든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은.






오늘의 노래

Dear jean - loyle carner

질리지 않을 때까진 멜로디를 흥얼거릴거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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