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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Oct 20. 2023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결국, 난 학교를 쉬기로 했다.

  '브런치'를 알게 된 건 몇 년 전이다. 늘 말보다는 글이 편했던 사람이라 어떤 사건이나 감정을 글로 풀어 놓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일기 쓰던 습관이 이어져 성인이 되어서도 바쁜 일상 중에 종종 일기장을 꺼내들었다. 육아를 시작하며 찾아왔던 우울감과 절망감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글쓰기 덕분이었다. 


  중소 도시 외곽에 위치한 작은 학교에서 몇 년 근무하다보니 작은 학교의 장점들이 너무 많았고, 특히 아이들이 해맑고 순수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점심 시간이나 방과후에 늘상 하는 일은 학교 주변을 뛰어다니며 '자연을 벗삼아' 노는 것이었다. 봄이면 학교 뒤뜰에 심겨진 보리수 열매 따서 먹고, 매실 따서 매실액 담가 가을에 먹고, 쑥 뜯어 쑥떡 해먹고, 텃밭에서는 상추, 고추, 토마토같은 작물을 키웠다. 가을이면 도토리 줍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학교가 너무 재밌고 행복하다며, 집에 가기 싫다고 할 정도였다. 학급마다 인원수가 차이가 많긴 하지만, 대체로 도시의 학교들보다는 인원수도 적어 아이들과 즐겁게 잘 지냈다. 

  하루 하루 소소하게 생긴 일상들을 글로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브런치 스토리에 가입을 했고, 글을 썼었다. 일기처럼 쓴 글이라 발행까지 할 용기가 생기지 않아 저장만 해두곤, 바쁜 일상 속에 잊고 지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그러다 올해 학교를 옮겼다. 근무했던 곳과 멀지 않은 면 소재지의 중간 규모 학교였다. 전근가는 교사가 별로 없던 학교여서 이미 학년 배정을 마친 상태였고, 난 빈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를 새로 옮기면 으레 당연한 거였다. 내가 맡은 학년은 5학년이었고, 한 반에 25명이었다. 예전에 5학년은 여러 번 해 본 적이 있었고, 25명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기 초부터 반 분위기가 이상했다. 몇 몇 학생들이 교실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욕설을 섞어가며 대화했다. 학급 규칙을 함께 세우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같이 이야기했지만 소용없었다. 급기야는 나에게 대들고 반항을 하기도 했다. 수업 중에도 끊임없이 방해해 수업을 멈추고 지도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지금까지 학교에 있으면서 아이들과 소통하는 교사로, 친절한 교사로 아이들을 대하려고 애쓰고 노력했고, 아이들과 잘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전혀 소용이 없었다. 몇 몇 아이들이 수업 분위기를 망칠 때, '조용히 좀 하자, 수업 하자'며 목소리를 냈던 아이들도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내 교직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뉴스에서나 보던 일을 겪으며 교권 침해 신고를 하게 됐다. 더 이상 교사 개인의 지도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에 신고를 했지만, 신고 후 주어진 특별 휴가 5일 내내 제대로 '아이를 지도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그 아이를 꼭 신고까지 했어야 했나'라는 죄책감, 나머지 아이들을 두고 도망쳐 왔다는 '미안함'에 나의 우울감은 점점 깊어져갔다.


  집에 혼자 있으며 잘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자꾸 눈물만 났다. 그나마 오후에 아이들이 하교 후 집에 오면 좀 나아졌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돌파구는 도서관이었다. 정말 미친 사람처럼 책을 잃었다. 그냥 글자를 읽는 것이 내가 살 길인 것처럼,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도서관에 가 하루종일 책만 읽다 오곤 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잡 생각이 안 들고, 뭔가 열심히 공부하면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리고 교권침해로 인정되어 학생에게 조치가 떨어졌다는 소식도 나에겐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아이를 보호해야 할 내가 아이를 해쳤다는 생각이 자꾸 날 괴롭혔다. 도저히 다시 돌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결국, 난 학교를 쉬기로 했다. 


  너무 힘들면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절대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고 주변에서 위로를 했지만, 그 교실에서 도망쳤다는 죄책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서 다시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했다. 지금 나의 이 상황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이 감정들을 다 쏟어놓고 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처음엔 매일 매일 정신없이 써 내려갔다. 어느 정도 쓰고 난 후, 발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혼한 이후에 살기 위해, 한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이혼의 과정과 그 이후의 삶을 쓴 어떤 분의 글을 읽으며 많은 부분 공감했다. 내가 극복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발행을 하려고 처음부터 쓴 글들을 읽다보니 몇 년 전에 저장해 둔 글들이 보였다. 글에 묻어나는 따뜻함이  순간, 내 안의 슬픔을 쓱 밀어냈다. '아, 이렇게 행복한 때도 있었는데..... 참 좋았었는데......그 땐 내가 참 괜찮은 교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행복했던 기억들도, 아팠던 기억들도 모두 끄집어 내어 정리해 보기로 했다. 

  엉킨 실타래를 하나 하나 풀어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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