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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Jan 11. 2024

박물관 떡볶이가 맛있어.

초등학생의 국립중앙 박물관에 대한 기억

  하루 종일 폭설이 온다는 날씨 예보에도 불구하고 5학년 막내딸과 함께 국립중앙 박물관에 다녀왔다. 5학년 사회 시간에 우리 나라 역사를 공부하면서 서대문 형무소에 대한 담임 선생님 설명을 듣고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가기로 했다가 갑작스런 눈 소식에 눈길을 뚫고 가기 부담스러워 국립중앙 박물관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아무래도 쾌적하게 실내에서만 관람하는거라 조금이라도 편하겠다는 심산으로 계획을 바꿨다.


  막내가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언니, 오빠 따라서 온 뒤로 처음이라 아이에게는 새로움 그 자체였다. 박물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어서였는지 전 날 늦은 취침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나설 채비를 했다. 출근 시간,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은 참 고되고 힘들었다. 아이는 가는 길에 꾸벅꾸벅 졸기도 하면서 한 시간 반동안, 출근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지하철의 복잡함도 묵묵히 견뎌냈다.


  박물관 초입까지 지하 연결 통로가 연결돼 있어서 갑자기 쏟아진 폭설에도 눈을 거의 맞지 않고 수월하게 입구에 도착했다. 한꺼번에 다 보려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자, 생각하며 1층에 있는 구석기 시대부터 돌아보기 시작했다.


  첫째와 둘째가 어렸을 때, 방학이면 보통 엄마들처럼 '박물관 교육'이라는 목적으로 박물관 투어를 했었다. 맘카페에서 아이들에게 좋다고 하는 박물관을 보면 찾아 다녔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도 어렵게 예약해서 가보고, 혹시나 관심있어 할까 싶어 공룡 박물관도 데려 가고, 경주 박물관도 갔었다. 전쟁 기념관, 독립 기념관 등 참 많이 다녔다.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을 호기심있게 살펴보면서 '공부'했으면 하는 기대감으로 데려갔지만 1시간이 채 안 되서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렇게 재미없는 데를 왜 데리고 왔냐고 투덜대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빨리 집에 가자고 보채고 떼 쓰면 먼 길을 고생해서 온 보람도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돌아왔었다. 처음엔 이런 상황과 아이들이 잘 용납 되지 않았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났던 것 같다. 여러 번 그 과정을 겪으며 아이들에 대한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억지로 내 틀 안에 잡아 넣으려는 게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자, 이렇게 싫어하는데 오지 말자, 우리집 아이들은 학구적인 아이들은 아닌가보다, 별별 생각을 다 하며 서서히 박물관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렸다. 아쉬운 기억으로 가득 찬 나에게 박물관을 가자고 먼저 제안한 막내가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박물관 구성이 참 잘 되어 있었다. 바닥에 붙은 화살표를 따라 박물관 1층을 한 바퀴 돌면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해 신석기, 청동기, 고조선, 동예, 부여, 옥저,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 신라, 발해, 고려, 조선까지 한번에 훑어볼 수 있었다. 많은 어린이들과 외국인들 틈에서 아이와 함께 하나씩 살펴가면서 관람을 시작했다.


  청동기쯤 갔을까? 아이가 한 마디 했다.

  "엄마, 배고파."

  시계를 봤더니 10시 40분,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온 데다가 지옥철을 타고 고생스럽게 오긴 했지만, 이제 겨우 관람 시작한지 30분 밖에 안 지났는데 배꼽 시계가 울리는 걸 보니 별로 재미없나 보다, 싶었다. 처음부터 욕심을 버리자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내 마음 한구석에 서운함과 속상함이 밀고 들어왔다. 이내 마음을 접고,"배고프면 점심 먹으러 가야지." 했더니,  순간 당황한 막내가 "지금 10시 40분인데 점심 먹어?" 되려 나에게 물었다. "시간이 중요한가? 배고프면 먹는거지." 쿨하게 내뱉고는 푸드 코트를 찾아 갔다. 지하철에서 잠깐 찾아 본 블로그에 푸드코트에서 파는 떡볶이가 맛있다는 글을 봤기 때문에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했다. 떡볶이 킬러였던 막내는 완전 신나서 따라 나섰다. 푸드 코트는 메뉴가 꽤 다양했다. 그 많은 메뉴 중에, 아이는 늘 먹던 떢볶이와 김밥을 시켰다. 난 핫도그와 어묵을 시켜 나름 구색을 맞춰 먹기 시작했다. 아이는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떡볶이는 처음이라며 연신 감탄을 했고, 급기야 먹다가 말고 반쯤 먹어버린 음식들을 사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리며 너무 맛있다고 자랑까지 했다.


  이른 점심을 먹고 이어서 관람을 했다. 한 시간 이상 천천히 돌면서 시대별 유물들을 살펴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통일 신라까지 왔을 때, 아이도 나도 지쳐서 중간 중간 놓여진 의자에 주저 앉기 일쑤였다. 발해 시대를 보면서 고려까지만 보고 집에 가자고 약속하고선 겨우 관람을 마쳤다.


  얼마 전 기록학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기록의 중요성을 느낀 터라 지하철에서 아이에게 우리가 봤던 것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고 했다. 아이가 한 마디 던지듯 말했다.

"아니 무슨 그릇들이 가는 곳마다 있으니까 무슨 그릇이 무슨 그릇이었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물건들이 똑같은 게 계속 나오니까 헷갈려. 뭘 봤는지 생각이 하나도 안나. 기억에 남는 거라고 푸드 코트에서 먹었던 맛있는 떡볶이랑 김밥, 치즈가 듬뿍 들어 간 핫도그밖에 없어."

  아이는 느낀점을 적겠다며 수첩을 달라고 하더니 손으로 수첩을 가리고서 뭐라고 끄적였다. 킥킥거리며 펼쳐 보인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떡볶이, 오뎅, 김밥, 핫도그가 맛있었다.


  긴 시간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각 시대별로 한 가지씩만 생각해보자고 하면서 겨우 적긴 했지만, 아이는 집에 와서도 언니, 오빠에게 계속 맛있었던 떡볶이 자랑만 했다. 아무래도 그 떡볶이 먹으러 국립 중앙 박물관에 한 번 더 가야겠다는 말과 함께.


  하루를 온종일 투자한 만큼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심 기대했지만 아이는 떡볶이만 기억했다. 스멀스멀 밀려드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아이와 함께 행복한 추억 하나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언제든 아이가 '국립중앙 박물관'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이는 역시 내 욕심대로 키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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