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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Nov 08. 2023

우리 집 세복이

 우리 집 막내 이야기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학교 준비물로 성장 사진을 가져가야 한다면서 태명을 물었다. 자기 것만 물어보질 않고, 언니와 오빠의 태명이 뭐였는지도 물었다. 가물가물 저 너머로 흐릿해진 기억을 잡아 끌어왔다. 첫째는 '사랑'이라도 지었던 게 분명한데, 둘째는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결국 '기쁨이었던 것 같아.'라고 얼버무리며 일단락을 지었다. 


  셋째의 태명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아픈 큰 아이를 낳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둘째 계획이 전혀 없던 상황에서 둘째가 생겼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두 명은 있어야지 싶어 감사한 마음으로 낳고 둘째가 15개월쯤 됐을 때였다. 제법 걷고 말도 시작해 '내년엔 복직해야지'생각하고 있을 때, 몸이 이상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다. 셋째가 생긴 것이었다. 5주가 채 되지 않은, 완전 초기였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셋째까지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소식을 들은 친정 엄마도 지우라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셨다. 당시, 교회에서 모임을 함께 하고 있던 목사님께 연락을 드려 상황을 말씀드리며 솔직하게 고민이 된다고 상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기도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때 묵상했던 말씀이 시편 65편 말씀이었다.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 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을 복을 주시나이다

주의 은택으로 연차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에는 양 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셋째 아이를 통해 윤택케 하시며, 작은 산들(아이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셋째 아이로 인해 즐거이 외치고 노래할 것이라고, 믿음으로 낳으라는 마음을 주셨다. '싹을 복 주셨다'는 말씀에서 '세 번째 복'이라는 의미로 '세복'이라고 태명을 붙이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 잊을 수 있을까? 12년이 지난 지금도 이때 주신 말씀이 생생하니 말이다.


  셋째는 우리에게 큰 기쁨이었다. 물론 나중에 쓰겠지만 엄청 힘든 면도 있었다. '엄마 껌딱지'라는 별명을 다 클 때까지 갖고 있었고, 결국 난 '허리 디스크'라는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런 딸이 우리를 웃게 만들어 준 에피소드 몇 가지를 적어 본다.



  딸이 올해 4월부터 영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 하년이 되면서 주변 친구들이 다들 영어를 너무 잘한다며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길래 동네 작은 학원을 보냈다. 학원 다니는 거 어떠냐 물었더니 '영어 공부하는 게 힘들다'면서도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하겠다'라고 말하는 것도 그저 대견하게 느.(우리 집 첫째는 너무 막내한테만 허용적이라며 불만이 많다.)

며칠 전, 일주일마다 한 번씩 있는 단어 시험을 위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homework'를 외우던 딸이 하는 말,

"어? home이랑 work가 합쳐져 있네? work가 뭐였지?"

"work는 일이지."

"그럼 집에서 하는 일을 숙제라고 만든 거야? 숙제는 학교에서도 하는데? 왜 homework로 단어를 만들었지?"

"숙제는 집에서 한다는 보통의 생각으로 그렇게 단어를 만들었나 봐."

"그럼 학교에서 하는 숙제는 schoolwork 인가?"


듣고 있던 남편과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첫째도, 둘째도 초등학교 고학년쯤에는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계면쩍어했는데, 요 막내는 늘 안아달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안아주고, 엉덩이 두들겨줘도 잘 때 되면 꼭 엄마를 부른다. 

  "엄마, 안아줘~"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한 번 안아주면, "한번 더!"를 외치고, 보통 세 번은 안아줘야 눈을 감는다.


  어제도 역시나 "엄마~"하고 부르길래 갔더니 안아 달란다. 조금 전까지 안방에서 아빠한테 안아달라고 하면서 같이 놀고 와선 잘 때 되니까 또 안아 달라고 하는 막내......

  "아까 아빠가 안아 줬잖아. 그런데 엄마가 또 안아줘야 해?"

  "아빠는 길 잃은 강아지였어. 혼자 안방에 있길래 내가 가서 놀아준 거지~!"

  허걱~!!



  막내는 금요일을 제일 좋아한다. 금요일 아침이면 콧노래를 부른다. 

"기분 좋은 일 있어?" 물으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오늘은 금요일이잖아." 대답한다.


  금요일이 좋은 이유는 다음날이 토요일이기 때문이란다.

  토요일은 늦잠도 잘 수 있고, tv도 맘껏 볼 수 있어서..... 특히 요즘엔 좋아하는 주말 드라마가 두 개나 생겼다. 한창 열심히 보면, '강남순'에 '무인도의 디바' 열혈 시청자다.

  '무인도의 디바'는 박은빈이 부르는 노래에 반해서 주말 내내 유튜브를 틀어놓고 노래 연습을 했다. 영상을 보면 제제라도 할 텐데, 노래 연습을 한다고 하니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는 노랫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리면 첫째와 둘째는 귀를 막지만, 우리 부부는 미소를 띤 얼굴로 한 마디 한다. 

  "와, 노래 너무 좋다!! 가수 해도 되겠어."


  어쩌다 한 번씩 문득, 아이가 내게 오지 못할 뻔했다는 생각에 아찔할 때가 있다. 

  이 기쁨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나에게 준 기쁨이 그저 감사하다. 내 역할은 잔소리도, 참견도 아닌, 그저 이 아이가 잘 자라 가는 걸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라며 오늘도 나를 다독이다.


   '자식의 은혜를 아는 부모'라는 책 제목이 부쩍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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