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 작가 북토크 감정을 마주하면 길이 보인다
수치심.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라 여겼는데..
문요한 작가님의<감정을 마주하면 길이 보인다> 읽으며 이 것이 나의 핵심감정이구나 싶었다.
수치심은 창피하고 부끄러운 나. 아닌가. 매사 자신감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나의 마음 저 깊은 곳에는 수치심이 각인되어있다는 것을 알게된 시간이었다.
사실, 트라우마처럼 강하게 남은 사건이 나에게는 없다고 여겼는데, 찬찬히 되집어보니 다른 기억들보다 선명한 기억 하나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동네 쌍둥이 동생들과 놀이터에 가기위해 횡단보도를 건너 막 달려가던 중, 뒤에서 뛰어오던 동생 중 한 명이 차에 부딪혀 쓰러졌다.
저만치 앞에 달려가고 있던 나는 얘네들이 왜 안오는지 뒤를 돌아보고 사고를 알게되었고, 어린 나는 공포감에 얼음이 되었다. 멀리서 큰일이 났다는 것만 인지하고, 무서운 마음에 다른 친구네 집으로 무작정 달려갔었지.. 친구의 방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조마조마 했던 그 마음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혹시나 아파트 방송에 사고에 대한 게 흘러나오지 않을까. 누가 나보고 잘못했다고 비난하지 않을까 별별 생각과 함께. 결국, 집에와서 엄마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책에 따르면 수치심이 핵심감정이 되면 여러 방어기제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순응, 회피, 투사, 과잉보상, 이상화...
읽다보니 그 모든 방어기제들에 조금씩은 다 해당이 되는 것 같다. 그 중에 가장 두르러진 건 과잉보상. 일ㅇ이 잘못되었을 때지나치게 자기비하를 하는 것도 과잉이지만, 겉으로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자꾸 보여주려 하는 것도 과잉에 해당된다. 나의 경우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데,이 또한 나를 착취하는 과잉보상에 해당한다는 것이 신선했다.
완벽주의라는 것이 내 삶을 종종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때가 많다. 일에서도 실수를 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하게되면 많이 자책한다. 관계에서도 깊이 들어가 서로를 잘 알게되면 나의 민낯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다.
성인이 되고, 직장에서 직장 동료의 말 한마디에 크게 주저앉아 삶이 잠시 무너져내렸던 적이 있다. 내가 나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너무 민감하고,그것에만 의존해 껍데기처럼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하게되었다.
일상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편안한 시간들, 글을 쓰며 나와 대화하는 시간들을 통해 마음을 많이 회복할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있고, 그것을 조금은 잘할 수 있겠다는 희망도 느끼면서 지금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채워지지 않은 공허감이 늘 있었다. 언제나 더 노력해야 했고, 무언가를 계속 하고있어야 심신이 안정되었다. 일상에서는 큰 불만족은 없지만 잔잔한 짜증들이 늘 올라왔고.
글을 쓰고, 내가 나를 조금씩 사랑해주면서 그런 짜증스런 반응들이 현저히 줄었다. 대체로 만족스런 날들을 보내고 있다. 현재는 직장에도 복귀하여 직장생활도 나름 원만하게 하고있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핵심감정이 있음을 알게되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를 좀더 깊이 알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조급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핵심감정이란게 독성이 약해지게 하는 것이 목표다. 완전히 빠른 시간에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면 오히려 그르칠 것 같다.
어린 시절, 혼자서 웅크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나를 다시만나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주위에 어른이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내가 그 사건에 대해 함구하기로 선택했다 생각했지만, 문요한 작가님은 그건 나의 선택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해주셨다. 한줄기 빛처럼 느껴지는 구원의 시간이었다.
직장생활에서 힘들어 주저앉았던 시간들을 통해 내가 나를 방치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시선을 내부로 돌려 자기돌봄을 실천하게 되었다면, 어제의 북토크 시간은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고, 민감할 수 밖에 없었는지 원인을 알게된 시간이었다.
스스로 부끄럽고 못났다는 생각. 그 수치심은 내가 실제 그런 사람이라 그런게 아니라, 상처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 공포감은 어디로도 해소되지 못하고, 내 안에서 점점 커지고, 변형되며 나의 성격 자체를 바꾸어 놓을만큼 힘이 커졌던 것이다.
핵심감정. 모든 감정이 다 긍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해소하고 독성을 옅게 해야하는 부정적인 감정도 있음을 배웠다.
그래. 최근 3년동안 나를 돌보는 시간들을 통해 나는 많이 달라졌다. 마음이 평온한 날들이 전보다 많아졌고, 기록하며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붙잡으며 일상은 전보다 만족스러워졌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어떤 사건들은 앞으로도 언제든 내게 찾아올 수 있고, 그 때 또 한 번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핵심감정을 계속해서 옅게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사건에 과하게 죄책감갖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타인의 작은 말과 시선을 오해하고 나를 싫어하는 거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 결국엔 쓸데없는 데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를 갉아먹고, 나의 가치를 스스로 절하하는 그런 일은 다신 없기를 바란다.
모두모두 귀한 시간들이다. 별것 아닌 것에 마음이 무너져봤기에 내 안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의 평온한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어제 그런 계기가 또 한 번 있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나의 핵심감정은 공포에서 생겨난 수치심이다. 그것 때문에 반대로 완벽주의라는 틀 속에 나를 가두어 지속적으로 착취하려 했던 것이고. 인간관계까지도 드러날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어 확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핵심감정의 완전한 회복은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이 회복되고, 대인관계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면 완결의 지표라 볼 수 있다고 한다.
늘 채워지지 않은 공허감과 짜증이 일상을 지배했다면, 지금은 일상에 만족하고, 대체로 즐겁다. 이전의 나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고 성장이다. 이젠, 일상이 즐거운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관계에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 이만큼 오기까지도 4년이란 시간이 걸렸지. 조급하지 않게 잘하고 있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제 더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핵심감정을 알아차렸으니, 나는 이 두려움과 수치심을 더 자주 어루만져 줄 것이다.
감정이 심하게 요동칠 때 분명 이 핵심감정이 건드려져서 그런것일테니, 일지를 쓰며 잘 관찰하다보면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조금씩 흘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희망이 생긴다. 정체를 모를 때보단 정체를 알고나면 더 다루기 쉬워진다. 자주 꺼내어 불러주리라. 나의 수치심. 그냥 어두운 그림자가 아닌 그 안에 빛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황금그림자다. 문요한 작가님의 그리 이름지으셨는데, 이 단어가 꽤 마음에 든다.
어린 내가 받았을 상처의 흔적들. 독소를 빼내며 억눌려있던 나의 빛과 에너지를 더 많이 발산하고 싶다. 지금도 긍정적이지만 좀 더 긍정적이고 솔직하며, 편안하고 자유롭게 에너지의 흐름이 바꾸고 싶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