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수행자의 행복 찾기>
<삼국지연의>에서 동탁에게 쫓기던 조조는 진궁을 만나 목숨을 구하고 함께 도망길에 오른다.
이후 아버지의 의형제인 여백사의 집에 머물며 하룻밤 숙식을 해결하게 되지만, 조조는 여백사가 자신을 관아에 밀고하려 한다고 오해해 그를 비롯한 일가족을 무참히 몰살하고 만다.
진궁이 조조의 잔혹한 악행에 분개하며 질책하자, 조조는 오히려 당당하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
소설 속 조조의 오만함과 잔혹함을 극대화하는 이 대목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참나와 세상의 관계를 단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정리해 주는 통찰로 다가왔다.
이제 참나를 각성하고 세상과 나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보자.
눈에 가볍게 힘을 주고, '지금 여기'에 존재해 보자.
시야가 또렷해지고 쉴 새 없이 떠오르던 생각들로부터 초연해졌다면, 이미 참나가 깨어난 것이다.
이제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이 개념을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 보자.
세상을 순수하게 인식하는 주체인 참나는 생각, 감정, 오감을 도구 삼아 이 세상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존재감, 즉 참나가 없이 생각과 감정, 오감이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지금 당장 내가 죽는다면 생각, 감정, 오감은 더 이상 내게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인식하는 주체가 사라지니, 이 세 가지 요소가 나와 별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지 알 길이 없어지고만다.
나는 평소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 가볍게 명상을 하곤 한다.
참나를 일깨우고 그 평온함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고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꿈속에서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명상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자각몽(自覺夢, Lucid Dream)을 꾸게 된 것이다.
자각몽이란 스스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꿈인 줄 알게 되면 내용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있어서, 이를 훈련해 꿈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그날 내가 겪은 자각몽은 지금까지 꿔온 일반적인 꿈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어느 초록색 방에 덩그러니 있었는데, 내 눈앞에 펼쳐진 시야는 어떤 고화질 화면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확연하고 선명했다.
현실보다 화소가 훨씬 높게 느껴질 정도여서, 그저 작은 방에 갇혀 있는 꿈이었음에도 주변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나는 초록색 방에서의 이 생생한 경험이 분명한 꿈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현실 세상의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는 생각도 명확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에게 완벽한 '현실'은 꿈속 초록색 방 안에서의 경험이었고, 당시 군 복무 중이던 현실의 나는 오히려 내 생각 속에서만 아득하게 존재할 뿐이었다.
이 경험은 자연스럽게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떠올리게 했다.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다 깬 장자가, 자신이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자신이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헷갈려 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더불어, 내가 인식하는 이 세상 역시 내 의식—정확히 말하자면 참나의 작용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직관이 강렬하게 찾아왔다.
참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늘 변함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참나라는 스크린 위로 생생한 현실, 환상 같은 꿈, 아무런 의식이 없는 깊은 잠이라는 세 가지 상태가 덧없이 교차하며 오갈 뿐이다.
그렇다면, 이 현실 역시 한바탕 꿈에 불과하니 내 마음대로 타인을 해치고 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사는 현실은 여러 사람이 공통된 규칙 아래 접속해 있는 '온라인 게임'이고, 꿈은 오직 내 캐릭터와 정보만 존재하는 '싱글 플레이'나 '마이룸' 모드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이라는 온라인 게임 속에서 우리는 각자 '참나'를 가진 듯 보이지만, 사실 이는 모두 하나로 연결된 우리 존재와 인식의 근원이다.
이 하나의 참나가 눈앞의 컵과 같은 어떤 공통된 정보를 수신하고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물질'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참나가 인식하지 않는 그 너머에 객관적인 물질이 스스로 존재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결코 인식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실재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밖에 객관적인 물질 세계가 굳건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오랜 습관이 만든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것을 인식하는 참나의 작용이 있기에 물질도 비로소 인식되는 것이다.
흔히들 인간은 광대한 우주에 떠도는 먼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우주는 우리의 참나가 인식하는 만큼만 존재한다.
이처럼 일체의 정신과 물질 작용이 결국 참나에서 비롯되었다는 통찰, 이것이 바로 유심론(唯心論)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