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수행자의 행복 찾기>
오래전, 달마 대사는 참나를 단박에 깨우쳐주는 선(禪)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머나먼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다.
그 곁에는 진리를 향해 묵묵히 정진하던 '혜가'라는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혜가 스님은 깊은 번뇌를 안고 간절한 마음으로 스승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제 마음이 몹시 불안합니다. 스승님, 부디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달마 대사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그 불안한 마음을 이리 가져오너라. 그러면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겠다."
그 말씀을 듣고 혜가 스님은 당장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불안한 마음의 실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 정신을 지금 여기에 집중해 아무리 찾아보아도, 형태도 없고 머무는 곳도 없는 그 불안을 끝내 끄집어낼 수 없었다.
이윽고 제자가 대답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도무지 그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스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느니라."
이 짧은 문답은 그저 현학적이거나 알쏭달쏭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고통을 잠재우는 아주 명쾌한 마음의 원리가 숨어 있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에고(Ego)'이다.
그 실체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휘둘리는 생각, 시시각각 요동치는 감정, 그리고 불편한 오감이 엉켜있는 덩어리일 뿐이다.
혜가 스님이 스승의 명에 따라 불안한 마음을 찾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온 신경을 집중했을 때, 그는 생각과 감정에 휩쓸리던 상태에서 벗어나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본연의 자리, 즉 '참나'를 각성하게 된 것이다.
참나와 에고의 관계는 일종의 제로섬(Zero-sum) 게임과 같다.
한쪽의 힘이 강해지면 다른 쪽은 자연스레 약해지기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물며 지켜보는 힘이 또렷해질수록, 형체 없이 떠돌던 불안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생각과 감정, 오감으로 구성된 에고는 본래 고정된 실체 없이 끊임없이 변하는 무상(無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참나의 자리에 고요히 머물며 내면을 응시하다 보면, 요란했던 불안은 마치 아침 햇살에 안개가 걷히듯 자연스레 사라지고 만다.
달마 대사와 혜가 스님의 이 안심법문(安心法問)을 그저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이나 깨달은 자들의 선어록으로만 남겨두지 않았으면 한다.
일상 속에서 문득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올 때, 가만히 눈을 감고 달마 대사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나를 옥죄는 그 불안한 마음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 마음의 실체를 찾으려 내면을 가만히 응시하는 바로 그 순간, 참나가 깨어나며 불안은 흩어지고 당신의 마음은 이미 편안해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