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도심 속 수행자의 행복 찾기>

by 기백천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억장이 무너지는 부당한 일들을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오래된 경구를 속으로 백 번 천 번 삼키듯 반복하곤 한다.


하지만 이 경구는 ‘참나’를 깨닫고 일상에 적용할 때 비로소 그 효과가 배가된다.


참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무작정 입술로만 되뇌는 위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본연의 빛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지 그 원리를 들여다보자.


우리의 내면은 세상을 순수하게 인식하는 관찰자이자 흔들림 없는 존재감 그 자체인 ‘참나’, 그리고 경험을 통해 축적된 개인적 자아 관념인 ‘에고(Ego)’로 나뉜다.


쉽게 말해, 우리가 1인칭 시점으로 세상을 경험할 때 그 세상을 바라보는 자가 바로 참나이다.


이 변함없는 참나를 바탕으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나이는 몇이며, 어디에 산다'는 식의 생각과 감정, 오감이 덧입혀지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개체로서의 고유성이 형성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나’라고 굳게 믿고 있는 에고다.


참나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영원불변의 자리이지만, 생각과 감정의 집합체인 에고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요동치며 변한다.


지금 슬픔에 빠져 있는가?


그것은 단지 참나가 ‘슬픔에 빠진 에고’를 지금 이 순간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또한 지나간다.


지금 환희에 차 있는가?


이 역시 참나가 ‘기뻐하는 에고’를 경험하는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지나가기 마련이다.


우리가 고통 속에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되뇔 때, 참으로 변하고 지나가는 것은 그 고통을 겪고 있는 나의 에고다.


나를 옥죄는 생각들, 폭풍처럼 요동치는 감정, 날카롭게 곤두선 오감들.


이 모든 현상은 결코 영원히 머물지 않으며 흐르는 물처럼 지나간다.


참나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괴로울 때 고통스러운 에고에 매몰되고, 기쁠 때는 들뜬 에고에 정신을 빼앗긴다.


찰나에 불과한 생각과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고요하고 충만한 참나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맑은 직관과 지혜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쁠 때는 들뜬 마음에 실수를 연발하여 상황을 악화시키고, 괴로울 때는 부정적인 감정의 수렁에 빠져 당장 취해야 할 최선의 행동을 미루게 된다.


그러니 지금 당장 견디기 힘들다면, 눈을 똑바로 뜨고 ‘지금, 여기’에 머물러 보자.


마치 1인칭 시점의 게임을 플레이하듯 내게 벌어진 상황을 한 걸음 떨어져 초연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어지럽던 시야가 조금이라도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면, 웅크려 있던 참나가 깨어나 다시 주도권을 쥐었다는 증거다.


그 고요해진 마음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되뇌어 보자.


참나의 초연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문제를 꿰뚫는 직관이 찾아오고 마땅히 해야 할 최선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체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참나에 머무는 경험, 그리고 거기서 우러나온 최선의 선택들이 징검다리처럼 이어지다 보면 어느새 복잡했던 문제는 풀려 있고, 한결 가벼워지고 홀가분해진 에고를 미소 지으며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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