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수행자의 행복 찾>
순수한 인식 그 자체인 참나가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 각자의 환경에서 살아갈 때,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자아 관념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흔히 ‘나’라고 굳게 믿고 있는 바로 그 자아 관념 말이다.
이를 에고(Ego)라고 부른다.
눈을 똑바로 뜨고 마음을 '지금, 여기'에 모아 참나를 일깨워 보자.
머릿속에 별다른 잡념이 들지 않고, 그저 또렷하고 고요하게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하고 있다면, 비로소 참나로 잘 깨어난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평소 '나'라고 생각하던 에고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에고를 가만히 살펴보면, 나만의 생각과 감정 패턴, 오감의 예민도가 얼기설기 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생각, 감정, 오감은 무상(無常)하여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하루에도 화내는 나, 슬퍼하는 나, 기뻐하는 나 등 수십 수백 가지의 에고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지금 슬픈가?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참나가 '슬픈 에고'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기쁜가?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참나가 '기쁜 에고'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개체적인 자아인 에고가 참나를 망각하면, 스스로를 남과 완전히 분리된 고립된 존재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삶을 영위하면서 오직 개인의 생존과 안위만이 최우선 순위가 되어버린다.
이처럼 오직 개체의 생존만이 일생의 목표인 존재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세상을 약육강식의 전쟁터로 여기고, 약자를 짓밟고 강자가 되어 군림하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라면, 이는 곧 에고의 동물적 본성을 충실히 구현하며 사는 것과 같다.
즉, 600만 년 전 진화의 갈림길에서 갈라져 나와 영원한 사촌으로 남은 '침팬지'의 본능과 진배없는 삶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에고의 근본적인 본성을 탐(貪), 진(瞋), 치(癡) 세 가지로 정의한다.
- 탐(貪):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고, 원하고, 먹고 싶고, 사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 진(瞋): 그러한 탐욕이 좌절되었을 때 일어나는 분노를 뜻한다.
- 치(癡): 어리석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논리적 비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까지는 인과 과정이 자연스럽지만, 돌연 '어리석음'이 등장하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치(癡)'는 앞선 탐(貪)과 진(瞋)의 과정으로 인해 시야가 극도로 좁아져, 이성적인 판단을 잃고 또 다른 어처구니없는 탐욕을 이어지는 무지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가장 일상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1)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치킨이 너무 먹고 싶다.(탐)
2) 결국 치킨을 시켜 먹었는데, 식욕을 절제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난다.(진)
3) (겨우 한 번의 실수일 뿐인데도 이성을 잃고) "내가 다이어트한다는 사실 자체가 웃기는 거 아닐까? 결국 나중에도 똑같이 실수할 테니 이번 다이어트도 이미 망한 거나 마찬가지다."라고 합리화한다.(치)
4) 망한 김에 치킨 한 마리 더 시키자.(탐)
5) 이하 무한 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