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상품이 되고자 하는 사회

<붉은사막과 무관용 사회>

by 기백천지

최근 출시된 국산 게임 '붉은사막'을 둘러싼 풍경은 기묘하다.


오랜 시간 축적된 기대감은 조작감을 비롯한 여러 결점 앞에서 빠르게 실망으로 바뀌었다.


물론 아쉬운 완성도에 대한 비판은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비판이 선을 넘어 '단일한 정답'으로 강요될 때 발생한다.


누군가 "그래도 나는 이 게임이 재밌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순식간에 조리돌림의 대상이 된다.


취향의 영역마저 흑백 논리로 재단하고, 주류 의견과 다르면 일단 물어뜯고 보는 이 살벌한 온라인의 풍경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그 뿌리에는 '다름'을 종종 '위협'으로 인식하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자리하고 있다.


국토는 좁고, 양질의 일자리와 기회는 극도로 한정되어 있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거대한 서바이벌 게임에 강제 접속된다.


정해진 트랙 위에서 남들보다 한 발짝이라도 앞서 나가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타인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아닌 '경쟁자'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여유가 거세된 사회에서 관용이 자라날 틈은 없다.


일상에서 누적된 피로와 불안은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 날 선 배타성으로 표출되곤 한다.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려야만 안심하는 강박이 생겨난 것이다.

'붉은사막이 재미있다는 누군가'를 공격함으로써 '비판하는 나'의 안목과 위치가 정당하다는 것을 확인 받으려는 서글픈 인정 투쟁이 온라인 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교육 역시 이러한 경향을 부추겼다.


학교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탐구하고 고유한 취향을 기르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매력적인 상품'으로 포장하는 법을 주입했다.


모두가 일제히 스펙을 쌓고, 유행을 따르며, 대세에 편승하는 것을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학습된 것이다.


정답이 정해진 사회에서 대세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은 불안감을 자극하는 존재다.


"모두가 별로라고 하는데 네가 감히 재밌다고 해?"라는 분노의 이면에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과, 나와 다른 기준을 가진 이를 배척함으로써 나의 집단적 소속감을 확인하려는 방어기제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게임은 본질적으로 유희를 위한 매체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조작감이 치명적인 단점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계관이나 액션이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할 만큼 매력적일 수 있다.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취향의 다양성'조차 존중받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여가 공간은 얼마나 더 숨 막히는 곳으로 전락할 것인가.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정해진 규격에 맞춰 살아가는 부품이 아니라, 각자의 색깔과 온도를 지닌 고유한 존재들이다.


타인의 취향을 깎아내린다고 해서 내 안목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기대했던 게임이 안겨준 실망감은 정당하게 비판하더라도, 유저들끼리 주고받는 무의미한 비난과 날 선 감정 싸움은 이제 그만두었으면 한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붉은 사막 펄어비스.jpg

사진 출처 - 펄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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