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만 마실 것 같은 사람도 똥은 싼다

<인생의 모순과 태극(太極)>

by 기백천지

한창 이성에 대한 환상이 많았던 중학교 시절.

친구 하나가 미모가 뛰어난 여자 연예인의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저 여자는 분명 똥을 싸지 않을 거야.”


당연히 그 친구도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겠지만, 사람이 밥을 먹고살면서 배변 활동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아무리 이슬만 먹고살 것 같은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그 배 안에는 냄새나는 오물이 차 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이 당돌했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인생의 모순'을 주제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더불어 이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태극(太極)’이라는 개념도 함께 곁들여보고 싶다.


지금, 이곳에 정신을 또렷이 집중하고 존재하면 우리 안의 '참나'가 각성된다.

참나의 상태가 깊어질수록 세상을 인식하는 수단이었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오감은 점차 희미해져 간다.

그렇게 도달한 깊은 참나의 상태를 관찰해 보면, 그곳에는 어떠한 이원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 길고 짧음, 크고 작음 등 대립하며 짝을 이루는 모든 개념이 소멸한 자리. 오직 ‘있다’라는 순수한 ‘존재’만이 남는 자리가 바로 참나인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토록 절대적인 참나로부터 다시 이원적인 세상이 비롯된다.


지금 이 순간, 순수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빛과 어둠, 하늘과 땅, 물과 불, 뜨거움과 차가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양극단으로 쪼개져 있으며, 동시에 그 사이에는 무수한 스펙트럼이 나열된 채 생생하게 박동하고 있다.

모든 것이 대립하면서도 공존하는 이 거대한 모순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네 삶도 이와 같다.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는 법이다.

어둡고 허름한 자취방에 살던 사람에게도 언젠가 볕 뜰 날이 찾아온다.

반대로 인생에서 가장 잘나가는 황금기에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가 잉태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한없이 좋은 사람이 내게는 몹쓸 사람일 수 있고, 내게 은인인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에고(Ego)는 늘 분별하려 든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밝은 부분만 취하고, 해가 되는 어두운 부분은 철저히 버리고자 몸부림친다.

그러나 과연 이 양극단 중 한쪽만 온전히 취하는 것이 가능할까?


결코 그럴 수 없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지듯,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짝이기 때문이다.

동양 철학에서는 이러한 세상의 양면성을 ‘음(陰)’과 ‘양(陽)’이라 칭하며, 그 둘을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로 바라보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만물이 생성되는 근원인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이 탄생한다.


즉, 우주는 본래 커다란 한 덩어리다.

굳이 그 속성을 쪼개어 설명하자면 음과 양이 되는 것이고, 다시 묶어 그 본질인 한 덩어리로 말하자면 곧 태극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떼어낼 수 없는 인생의 모순과 태극의 원리를 이해하면 삶의 수많은 문제들이 자연스레 풀리기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 헛된 에고가 쥐고 있던 집착은 내려놓게 되며, 동시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최선의 행동이 맑게 떠오른다.


서양의 변증법 논리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기본 상태인 ‘정(正)’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이에 반대하는 ‘반(反)’의 도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 모순과 갈등을 딛고 우리가 만들어낼 새로운 ‘합(合)’이 한 차원 높은 성장과 발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반의 도전에 굴복하여 하강을 맞이할 것인가는 온전히 우리의 선택과 몫에 달려 있다.

강아지똥 권정생.jpg

P.S. 모순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권정생 작가의 동화, <강아지똥>의 대표적인 한 장면이다. 사진은 <오마이뉴스>에서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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