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남 탓은 삶의 윤활제가 된다

<도심 속 수행자의 행복 찾기>

by 기백천지

타인의 언어적, 비언어적 피드백에 마음이 쉽사리 요동칠 때가 있다.


상대의 미세한 표정 변화나 날 선 말 한마디에 '내 잘못인가?' 하고 자연스레 위축되곤 한다.


명상을 하며 마음의 작용을 들여다보면, 생각과 감정이란 결국 외부 자극이라는 입력(Input)에 따른 출력(Output) 프로그램처럼 인과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오랜 시간 몸에 밴 자책의 습관은 이해와는 별개로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이제는 이 무익한 굴레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가만히 되짚어 보면, 내가 태어난 나라, 부모, 성별, 그리고 외모까지 내 삶의 시작점에서 내가 온전히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없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 역시 마찬가지다.


100% 내 의도대로만 흘러가는 상황은 없으며, 상대방의 기분이나 예상치 못한 변수 등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요인들이 늘 뒤섞여 있다.


애초에 내가 원해서 주어진 조건이 아님에도 치열하게 살아왔듯, 내 통제 밖의 일들이 빚어낸 결과 앞에서도 지나치게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살면서 내 몫의 잘못을 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실수를 저질렀다면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변수들까지 전부 내 탓으로 돌리며 과도하게 위축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나의 명백한 잘못마저 무책임하게 타인에게 떠넘기는 비겁한 자기합리화는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나 자신을 가혹하게 괴롭히면서까지 모든 화살을 내게로 돌리며 살고 싶지는 않다.


끊임없이 내 탓만 하는 태도는 겉으로는 책임감 있어 보일지 몰라도, 때로는 '나는 이미 스스로를 충분히 벌하고 있으니 더 이상 나를 건드리지 마'라는 나약한 방어 기제로 타인에게 비치기도 한다.


이는 관계를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소통을 단절시키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갈등과 오류 앞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며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이다.


한껏 위축된 태도와 끝없는 자책의 늪에서는 결코 긍정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때로는 조금 뻔뻔해 보일지라도 "이건 온전히 내 탓만은 아니야", "그럴 만한 상황이었어"라며 어깨의 짐을 덜어내는 '적절한 남 탓'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남 탓이란 특정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와 외부(상황, 타인, 환경)로 책임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환기 작용이다.


상처받은 에고를 보호하고 다시 일어서서 문제를 이성적으로 직시하게 만드는 훌륭한 삶의 윤활제인 셈이다.

내 탓이라는 무거운 족쇄를 풀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상황을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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