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일생(一日一生)의 철학>
인생을 흔히 긴 여정이나 마라톤에 비유하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하루라는 짧은 시간 안에 한 사람의 일생이 온전히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루가 하나의 온전한 인생이다'라는 명제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을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오게 한다. 만약 우리가 잠을 '작은 죽음'이라 여기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을 '새로운 탄생'이라 정의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은 결코 어제의 연장선이 아닌 독립된 하나의 생애가 된다.
우리가 아침에 설핏 잠에서 깨어났을 때를 떠올려 보자.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 그 짧은 찰나에는 어제의 고통이나 내일의 걱정이 끼어들 틈이 없다. 오직 달콤한 잠의 여운과 존재한다는 순수한 감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만약 이때 우리에게 지난날의 기억이 전혀 없다면 어떨까. 아마도 우리는 그 순간을 온전히 새로운 인생의 시작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식이 명료해지기 무섭게 지난날의 회한과 고통을 서둘러 소환한다.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오늘이라는 새로운 인생에 어제의 낡은 그림자를 덧씌워 스스로를 괴로움의 굴레로 밀어 넣는 것이다. 삶에서 불만족과 역경은 피할 수 없는 상수와 같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라고 가정한다면, 고통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날의 괴로움은 그날의 죽음과 함께 마침표를 찍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나를 결정짓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새로 태어난 생명을 과거의 망령에 저당 잡히는 것과 다름없다.
예수도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는 가르침을 전한다. 이는 매일의 새로운 하루가 우리에게 주어진 독립된 인생임을 시사한다. 어제가 얼마나 힘들었든, 혹은 내일이 얼마나 두렵든 간에 우리가 실제로 발을 딛고 살아낼 수 있는 시공간은 오직 '오늘'이라는 이름의 인생뿐이다. 어제의 짐을 오늘로 끌고 오지 않고, 내일의 불안을 미리 가불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현재라는 선물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결국, 하루를 온전한 일생으로 여기는 마음가짐은 우리를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해방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을 새로운 생의 축복으로 받아들이자. 우리에게 허락된 이 짧고도 고귀한 하루라는 인생을 유감없이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이라는 거대한 신비에 보답하는 가장 아름다운 태도일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한 번의 새로운 생을 살고, 밤이 되면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며, 다시 내일이라는 기적 같은 환생을 기다린다.
<참고>
윤홍식의 철학힐링 - 하루를 한 생으로 보고 로고스를 연구해 보십시오, 홍익학당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