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오오오력이 없다면

<노력과 운>

by 기백천지

쇼츠를 하나 보았다. 오타니 선수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타니 선수는 고등학생 때 키 186cm에 몸무게 65kg의 마른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구속 160km/h를 달성하기 위해 벌크업 식단으로 매일 10,000kcal를 먹었다. 아침에 밥 다섯 공기, 점심에 특대형 도시락과 각종 빵, 저녁에 밥 열 공기를 먹는 엄청난 식사량이었다. 그의 초인적인 노력이 지금의 오타니를 만들었구나 감탄하던 찰나, 어떤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먹고 소화시키는 것도 결국 재능이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노력보다는 타고난 재능이나 운을 더 높게 쳐주는 경향이 짙다. 언제부턴가 '노력'이라는 단어는, 권력을 쥔 기성세대가 아랫세대의 팍팍한 현실은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입맛대로 강요하는 이른바 ‘노오력’으로 조롱받고 있다.


실제로 운과 재능의 힘은 강력하다. '운이 70%, 노력이 30%'라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의 현실 앞에서, 뼈를 깎는 노력에도 삶이 나아지지 않아 절망해 본 세대에게 '노력 무용론'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인 불만이다.


하지만 세상의 불공평함을 탓하며 노력마저 냉소하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세상이 결과만을 두고 재능을 논하며 구조적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을지라도, 우리가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변수는 결국 '나의 노력'뿐이기 때문이다. 씨앗을 심지 않으면 애초에 싹이 틀 확률조차 0이 되듯이, 성취하려는 최소한의 시도 없이는 아무런 결과도 피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타인의 재능과 나의 부족함을 저울질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아까 전 오타니 선수의 얘기를 다시 해보자. 평범한 야구 선수가 오타니의 식단을 똑같이 따라 한다고 해서 그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어쩌면 억지로 먹은 것을 소화하느라 배탈이 나서 하루 훈련을 통째로 망치고 오히려 기량이 퇴보할지도 모른다. 즉, 진짜 노력은 '성공한 타인의 방식'을 맹목적으로 베끼는 것이 아니다. 어제보다 밥 한 숟갈을 더 먹어보며 내 위장의 한계를 파악하고, 내 몸에 맞는 훈련법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진정한 노력이다.


그 시행착오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적어도 남의 옷을 억지로 껴입으려던 어제의 나보다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지혜로워질 것이다. 모든 상승과 성장의 기준점은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미래의 나인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남과의 비교를 멈추고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진짜 성장이 시작된다.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해 온 '잘났다', '못났다'는 가혹한 평가나, 힘써 노력했지만 마음 아프게 실패했던 과거의 결과표는 이제 내려놓자.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해리는 에그시의 잠재력을 일깨워주며 다음과 같은 조언을 건넨다.


“타인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한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고귀한 것이다.”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이라는 개념을 대중화시킨 스탠퍼드 대학교의 캐럴 드웩(Carol Dweck) 교수 역시, ‘개인의 잠재력은 측정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다’라는 전제하에 이 개념을 정립했다.


노력해도 안 될 수도 있다. 노력해도 내가 부러워하는 저 천재만큼은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노력조차 안 하면 정말 아무것도 안 된다. 내게 맞는 속도와 방식으로 노력을 지속한다면, 어제의 나보다는 분명 나아질 것이고 그 끝에 어디까지 성장해 있을지는 나조차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눈을 똑바로 뜨고 어깨를 당당히 펴자.


그리고 타인이 아닌 나의 성장을 위해, 지금 하는 일에 다시 한번 묵묵히 몰입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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