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수행자의 행복 찾기>
우리는 종종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영적인 성장의 길에 오른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삼독심(三毒心)의 늪에서 스스로를 구원하고,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행복을 전하겠다는 다짐은 무척이나 숭고하다.
하지만 이 맑은 의도를 품고 걷는 수행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다. 굳게 마음을 먹고 나아가는 와중에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에고의 덫에 걸려 깊은 슬럼프에 빠지곤 한다. 지금, 여기에서 순수하게 세상과 내 에고를 알아차리며 현존하는 위대한 본질, 즉 '참나'를 깨달았다고 자부하는 순간조차 삶의 민낯은 차갑기만 하다. 깨달음의 빛이 잠시 스며들었다 해도, 하고많은 나쁜 날들 중에 간혹 좋은 날이 섞여 있는 고단하고 구질구질한 인생의 궤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수행의 진전이 있어 깊은 명상의 환희를 체험하고, 내 본질인 참나의 미덕으로 선행을 베풀고 나면, 마치 하늘이 나의 얄팍한 깨달음을 시험이라도 하듯 나를 다시금 에고의 못된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 속으로 거칠게 밀어 넣는다. 그런 순간이 닥치면, '그토록 애써 수행해 봤자 결국 제자리걸음 아닌가' 하는 지독한 자책심과 허탈함이 밀려와 마음의 기둥을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그 끝없는 좌절과 자책의 끄트머리에서, 문득 내 깊은 속으로부터 섬광처럼 떠오르는 깨달음이 있다. 만약 '내가 있다'라는 존재의 순수한 느낌 자체가 참나라면, 나는 단 한 순간이라도 그 참나를 놓친 적이 있었던가? 가만히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대답은 명확하다. '아니다.' 나는 환희의 순간에나, 절망의 순간에나, 심지어 에고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조차 그저 온전한 '나'로서 존재했다.
두 번째로, 제아무리 내 역량이 부족하고 세상의 풍파가 거세어 역경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다 한들, 내가 부단히 이어온 삶의 공부를 멈춘 적이 한시라도 있었던가? 이 역시 '아니다'이다. 나는 깨어 있는 순간에도, 심지어 꿈을 꾸는 무의식의 시간 속에서도 24시간 내내 묵묵히 수행을 이어왔다. 당장 눈앞에 나타난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내 영혼은 단 한 순간도 배움과 성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다시금 흐트러진 마음을 거두어 다잡는다. 과거나 미래의 환상에서 벗어나 가만히 호흡을 고르면, 시간과 공간은 언제나 '지금, 여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영원한 현재 속에 불멸하는 '나'가 항상 현존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성취나 결과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대신, 24시간 한시도 멈추지 않고 삶이라는 거대한 도장에서 분투하는 나 자신에게 온전한 만족과 위로를 보내려 한다. 결과가 어떠하든 끊임없이 나아가며 묵묵히 공부하는 이 마음이 있는 한, 결국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반드시 잘 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