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착각>
우리는 매일 거울을 보며 그 안에 비친 모습을 온전한 ‘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거울 속의 이미지는 좌우가 반전된 환영에 불과하며, 실제 타인이 바라보는 우리의 객관적인 모습과는 반대다.
청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평생 나의 목소리라고 굳게 믿고 살아가는 그 소리는, 사실 두개골의 뼈를 타고 울리는 저음이 섞인 주관적인 울림일 뿐이다. 타인이 듣는 진짜 내 목소리는 그 저음이 배제된 소리이기에, 우연히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우리는 낯섦을 넘어 때로는 묘한 거부감마저 느끼곤 한다.
이 일상적인 두 가지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통찰을 던져준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가진 ‘나에 대한 이미지’가 그 출발점부터 객관적 진실과는 꽤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인식하는 나의 모습과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전혀 다른 전제 위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 자신에 대해 굳게 믿고 있는 관념들 속에는 필연적으로 오류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때로는 그것이 사실과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조금 더 외부로 확장해보자. 나 자신에 대한 인식조차 이토록 불완전하고 주관적이라면, 우리가 세상과 타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생각과 잣대들 역시 단단한 착각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신념, 타인을 향한 평가, 세상에 대한 절망이나 기대가 과연 온전한 진실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불교의 경전, <금강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視觀)
이는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바라보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위법’이란 우리의 에고(Ego)가 만들어낸 생각과 감정, 그리고 오감이 빚어내는 일체의 작용을 의미한다.
우리는 스스로가 지어낸 ‘생각의 감옥’에 갇혀 살아간다. 그 좁은 감옥 안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내가 남보다 잘났다’며 우월감에 빠지거나, 반대로 ‘나는 한없이 부족하다’며 스스로를 옭아매는 오판을 거듭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이 임의로 잘라낸 단편적인 조각일 뿐, 결코 변하지 않는 절대적 진실이 아닌 한낱 망상에 불과하다.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그 길고 깊은 꿈에서 깨어날 때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눈을 또렷이 떠서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파편화된 관념들, 즉 ‘나’라고 착각했던 그 견고한 생각의 감옥에서 마침내 걸어 나왔을 때 경험하는 해방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진정한 자유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텅 빈 마음의 자리에서 비롯된다. 그 고요하고 자유로운 자리에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세상은 어쩌면 우리의 화려한 기대나 환상만큼 완벽하게 아름답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깊은 좌절의 늪에 빠져 세상을 원망했을 때만큼 가혹하고 나쁘기만 한 곳도 아니다. 거울 속의 반전된 상이나 녹음기 너머의 낯선 목소리에 얽매이지 않듯, 섣부른 판단과 망상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진실된 풍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껴안는 것, 그것이 곧 진정한 자유이자 삶을 향한 가장 깊은 사랑이다.
<참고 도서>
나라는 착각(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 그레고리 번스著, 흐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