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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가루 May 19. 2022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책 소개

  듣기만 해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간질간질 하며 설레는 단어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별빛, 벚꽃, 영화 「클래식」, 첫사랑이 그렇습니다. 그중에서도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특히 저를 설레게 합니다. 괜히 교생선생님이 실습을 나오면, 선생님 첫사랑 이야기해 주세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이 책도 주인공이 자신의 첫사랑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시작합니다.

  이 책은 중학생 때 동네 도서관에서 제목만 보고(아마 그때도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좋아했나 봅니다) 빌렸다가 러시아 인물들의 어려운 이름에 가로막혀 읽지 못하고 반납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사람의 이름 정도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얼마 전 근처 도서관의 민음사 전집이 놓여있는 곳을 지나가다 빌려 보았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중학생 때 처음 빌렸을 때도, 이번에 다시 빌렸을 때도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제목 때문입니다. 제목에서 저는 내용도 간질간질 하리라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40 페이지 정도 읽었을 무렵 깨달았습니다. 아, 이거 적이 매운맛 소설이구나. 지나이다와 사내들이 하는 벌금 게임부터 시작해서 블라디미르에 대한 지나이다의 태도까지. 심지어 아버지가 자신의 연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에서는 책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아 제발"이라고 말해버렸습니다. 아마 저도 모르게 블라디미르에 굉장히 감정을 이입해서 읽었나 봅니다. 4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라는 여왕님의 명령에 주저 없이 뛰어내리는 블라디미르. 어장에 갇혀 속앓이를 하다 가끔 던져지는 지나이다의 가벼운 키스에 그동안의 슬픔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 블라디미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 오직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마저도 상대는 나를 시동(侍童)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 설명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로 속으로 들어가주세요. 들어가서 오랫동안 고통받고 헤매주세요"라고 말한다면 기꺼이 들어가고 마는 포로. 목 끝이 뜨거워지는 질투, 슬픔을 느낄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이 숨겨둔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밖에 없는 바보. 사랑 앞에서 이성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굉장히 부럽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사랑에 대해서 장난치는 잔인한 일 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해봅니다.

  읽으면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와 아홉살 인생 이 생각났습니다. 이 소설을 연애 소설이라기보다는 성장 소설에 가깝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는 독자가 누구든 글을 읽는 동안 독자 스스로 블라디미르가 될 수 있도록 섬세한 묘사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단편이라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읽어볼만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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