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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가루 May 19. 2022

권지예의 「꽃게 무덤」

해설

  대학에 들어가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게를 먹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만,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종종 게를 먹곤 했습니다. 간장 게장을 저와 어머니는 먹지 못했기 때문에 저희 가족은 주로 게를 쪄서 먹었습니다. 사실 저는 게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음식은 질보다 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고, 치킨이나 삼겹살 정도의 맛이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의 맛은 다 똑같다고 느껴버립니다. 절대로 게가 맛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게의 살을 먹기 위한 수고를 저는 귀찮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게를 먹고 나면 배가 부르기 어렵습니다. 이는 과학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게에 지방 함량이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지방을 먹어야 포만감을 느낍니다. 어쨌든, 쉽게 배고픔을 느끼는 저에게 게는 사치스러운 음식입니다.


  「꽃게 무덤」은 30 페이지가 되지 않는 매우 짧은 단편입니다. 대학 시절 학교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읽었는데, 얼마 전 동네 도서관을 또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그때의 기억이 나서 다시 빌려 보았습니다.


  어떤 감각을 매개로 하여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매우 흔한 경험입니다. 그중에서도 인간은 시각이 가장 발달한 동물이기 때문에 보통 무엇인가를 보고 과거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입니다. 아니면 MP3에서 우연히 재생된 옛날 노래를 듣고 그 노래를 자주 듣던 시절의 추억이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각을 매개로 누군가를 떠올린다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예전 애인과 자주 다니던 식당 근처를 지나면서 그 사람의 기억이 갑자기 찾아올 수는 있지만, 특정 음식을 계기로 어떤 사람을 기억하게 되는 것은 상당히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꽃게를 매개로 자신의 옛 애인을 떠올립니다. 이 이야기는 아래층에서 흘러 들어온 간장게장의 냄새를 묘사하며 시작됩니다. 남자는 방에 퍼져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간장 냄새를 "바이러스처럼 침투되어"있다고 말합니다. 주인공의 마음속에는 옛 애인의 기억이 꽤나 지독하게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신기하게도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알레르기 때문에 게를 잘 먹지도 못했습니다. 그녀로부터 식성을 옮겨 받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꽃게는 제가 예전에 느꼈던 것처럼 텅 빈 것을 상징합니다. 둘은 바다에서 자살기도를 하던 여자를 남자가 말리며 우연하게 만났습니다. 처음 두 사람이 만났던 그날, 여자는 자신의 속을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꽃게를 먹습니다. 아이러니합니다. 꽃게를 아무리 먹어도 배를 채우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관계를 시작하고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며 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둘은 헤어지기 전까지,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도 텅 비어 있는 채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떠나버린 직접적인 계기에서 우리는 비슷하지만 살짝 다른 두 가지의 공허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자에게는 사모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해서 생겨나는 마음의 공허함을, 여자에게는 떠나버린 사람을 그리워하는 텅 빈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남기고 간 물건을 바다에 떠내려 보내고, 이제는 그녀를 완전히 "잊을 수 있겠다"라고 말하며 남자는 식욕이 돋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간장게장을 사기 위해 포구로 출발합니다. 텅 비었다는 자신의 속을 채우기 위해 이제는 "잊었다고" 믿는 옛 애인이 좋아하던 간장게장을 사러 가는 것이 몹시 인상적입니다. 그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간장게장을 아무리 먹어도 자신의 텅 빈속을 채울 수 없으며 껍데기만 무성한 꽃게 무덤만이 그의 앞에 남을 것이라는 것을요.


  먹어도 배가 고픈 꽃게로 사람의 공허한 마음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외롭기 때문에 마음속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 누군가를 만난 것인데, 그것이 생각처럼 쉽게 채워지지만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는 나를 돌아봐야 합니다. 내 마음속 빈자리가 크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과 만난다면. 어쩌면, 상대의 속을 내가 파먹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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