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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Sep 06. 2024

브런치냉담자

대학시절 내 인생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종교를 믿으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 성당에 간 적이 있었다. 대학이 가톨릭계라 교리수업을 듣고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기대했던 탓일까 나는 성당을 다니면서도 쉽사리 인생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고 종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서서히 성당의 발길을 끊었다. 가끔 성당 앞의 성모마리아상이나 예수그리스도 십자가를 볼 때면 어렸을 때의 성급함이 부끄러워 두 눈 질끈 감고 빨리 지나쳤다. 그렇게 나는 냉담자가 되었다.


내가 처음 브런치스토리를 입문하게 된 때는 아이가 장애등록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자폐판정을 받고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며 나는 메말라가고 있었다. 툭하면 울고 화를 냈다.

kubler-ross's stages of grief (출처: 위키피디아)

슬픔의 단계는 총 5단계로 나뉘어 있다. 어떤 사건을 마주쳤을 때 부정(믿을 수 없는 단계)-분노(불공평하다 느끼고 과반응)-타협(변화가 불가피함을 인지하고 협상을 시도)-우울-수용 이런 순서로 진행하게 되는데 나는 그래프의 곡선을 왔다 갔다 하며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몇 년간의 치료를 하면서 점점 우리 아이는 발달 장애가 맞구나 싶으면서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믿을 수 없었고 모든 것이 다 미웠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그때 우연히 브런치 스토리 작가신청을 보게 됐고 나의 이런 화나고 우울하고 자책하는 내 널뛰는 감정들을 글로 써서 제출했다. 며칠 뒤 대뜸 브런치 작가 승인이 됐다는 메일이 날아왔다. 나는 누군가의 심사를 거쳐 내 글이 인정을 받았다는 기쁨에, 내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즐거움에 초반에는 글을 열심히 발행했다. 아이와 지내며 있었던 일들과 느낀 감정들을 마구 써 내려갔다. 남편은 돈도 안 되는 거 왜 쓰냐며 핀잔을 줬지만 나에게는 이게 유일한 창구였다. 키보드를 부서져라 쳐가며 써 내려가면 갈수록 응어리졌던 내 마음들이, 비수로 꽂혔던 세상살이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러다 문득 내가 썼던 글들을 한번 찬찬히 훑어보게 되었다. 내 생각, 내 감정을 글로 쏟아내기에 급급했지 다시 들여다볼 생각은 여태 한 적이 없었다. 글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점점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이게 내가 쓴 글이라고?'


글들은 하나같이 자기 연민에 빠져있었다. 세상에 나밖에 불쌍하고 초라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특별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명목으로 나 너무 힘들어요라고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두려움, 슬픔을 잘 승화해 한 편의 멋진 글로 탄생시킨 반면 나는 그냥 막무가내 어린아이처럼 떼쓰며 내 글 좀 봐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들은 하나의 글이 아니라 그냥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나는 정화되지 않은 마음을 구깃구깃 구겨 마구 브런치스토리에 올려놓고는 사람들의 라이킷이나 댓글에 뿌듯해하고 있었다.

 

갑자기 글이 쓰기 싫어졌다. 잘 쓰지도 못하는 글빨에 자기 연민 가득한 글을 써서 사람들의 라이킷에 환호하고 조회수에 일희일비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발행한 글들을 모조리 지웠다. 한동안 브런치스토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글을 올리지 않자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라는 브런치 알림이 떴고 그 메시지가 왠지 묵직하게 나를 압박하는 것 같아 알림을 꺼버렸다.


하지만 쉽사리 브런치 앱을 지울 수는 없었다. 생각날 때마다 슬쩍 들어가서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었다. 브런치스토리에는 천태만상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이 쓴 글도 있었고 자식을 먼저 보낸 사람들 이야기도 있었다. 이혼, 난임, 여행, 결혼, 시댁 등 인생의 다양한 소재들로 사람들은 저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글들을 보며 이런 인생들도 있구나,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가진 사람들도 많구나 싶었다. 기구한 인생사를 담담하게 이야기해 주는 그들을 응원하며 정작 내가 위로받는 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왔다. ‘내가 무슨 글이야’하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머리에서는 이야기들이 기어 나와 손가락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써봐도 되지 않을까?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제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중


글을 잘 못쓰지만, 만담꾼처럼 재미나게 풀어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쓰고 싶었다. 내가 겪은 일들이 나를 갉아먹는 벌레들이 아니라 아름답게 날아다닐 나비가 되도록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을 써야 내가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오랜 망설임 끝에 브런치 냉담자였던 나는 뻔뻔하게 다시 브런치스토리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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