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이 느리다. 조카들은 볼 때마다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이 저만큼 멀어져 있고 준후는 그저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준후가 당연히 이건 못할 거야, 저건 할 수 없어라는 편견이 기본베이스로 깔려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그런 나의 편견을 깬 일이 몇 개 있었다.
준후가 노래학원에 가는 날이었다. 그날은 애 표정이 좀 안 좋고 배를 계속 만지는 걸로 봐서 속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집에 갔다 다시 올 시간도 없었고 공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자 해도 아이가 계속 거부를 했다. 선생님께 대충 상황을 말씀드리고 노래학원에 들여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분 뒤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준후가 계속 배를 만지고 울어서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어머님이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부랴부랴 노래학원으로 달려갔더니 화장실 앞에서 선생님이 휴지를 손에 쥐고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부리나케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로 들어가니 양변기가 있는 곳에 문이 잠겨 있었다. 화장실 문은 대개 걸쇠나 후크형으로 되어 있는데 준후가 들어가면서 문이 잠겨버린 모양이었다.
“어머, 어떡해. 얘는 이런 문 못 열 텐데.”
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문틈 사이로 보니 준후는 양변기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얘가 문을 여는 방법을 몰라 서성거린다고 생각했다. 준후는 가르쳐주고 연습하지 않으면 어떤 것 하나 스스로 체득하는 법이 없었기에 문고리를 옆으로 밀거나 위로 올리는 직관적인 것도 당연히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긴 막대기를 이용해서 문을 열어야 하나, 내가 화장실 위로 올라가서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최후의 수단으로 119를 불러야 하나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였다.
달칵!
갑자기 화장실 안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태연한 표정의 준후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손은 문고리를 잡은 채였다.
나는 대변을 본 것보다 아이가 이런 화장실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해 계속 준후에게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그런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셨다.
또 한 번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퇴근 후 준후와 언어센터에 가야 하는데 비 때문인지 도로에서 차가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언어센터에 갈 시간은 바짝바짝 가까워졌고 나는 급한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남편도 일이 있어서 바로 집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오늘 수업 못 간다고 선생님에게 알려야겠다 생각하던 차 남편이 말했다.
“아니면 엄마한테 부탁드려 보자.”
“어머님이 언어센터 가는 길을 모르시는데 어떻게 가?”
“준후가 알려주겠지.”
“말도 안 돼. 준후가 거기 어떻게 알고 가? 못 가.”
마침 시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며칠 계실 때였다. 하지만 어머님은 센터까지 가는 길을 모르시고 준후가 알아서 센터까지 간다는 건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집에서 센터까지 거리는 가까웠지만 꺾어야 되는 지점이 많았고 골목에 자리 잡고 있어 나도 처음 몇 번은 헤맨 적이 있었다.
게다가 준후는 길을 걸을 때 제대로 걷는 법이 없었다. 항상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고 팔을 파닥거리거나 방방거리며 길을 다녔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얘가 길을 외웠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밑져야 본전이란 식으로 못 가면 그냥 다시 할머니랑 집에 돌아오면 되니 자기가 시어머니께 말씀드린다 하며 전화를 끊었고 나는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드리고 오늘 못 갈 수도 있다고 알렸다.
준후가 할머니랑 센터 잘 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핸들을 꽉 잡고 있을 때였다. 몇 분 뒤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 역시 길을 못 찾아 집에 간다고 전화하신 건가 싶어 얼른 전화를 받았다.
“센터 도착해서 준후는 이제 수업 들어갔어. 준후가 길을 잘 찾더구나.”
나중에 어머님께 들은 이야기로는 어머님이 센터에 가자고 하니 준후가 알아들은 건지 할머니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단다. 준후가 코너코너 돌 때마다 시어머니도 반신반의하며 따라갔는데 제시간에 언어센터에 도착한 걸 보고 어머님도 깜짝 놀라셨단다.
당연히 못할 거라고, 얘는 아무 생각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단정한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자녀를 믿어주고 할 수 있다고 격려해도 모자랄 판에 엄마인 내가 아이를 불신하고 얘는 성장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운동화를 못 신을 테니 신겨주고 책가방을 못 챙기니 내가 준비물을 챙겨주고 우산을 못 쓰니 내가 우산을 씌워주고 말을 못 하니 오늘은 어땠니 하며 물어보지 않았다. 어쩌면 준후의 성장을 막은 건 당연히 못한다고 생각한 나 때문은 아니었을까?
요즘은 준후에게 도움의 손길을 먼저 주지 않고 조금씩 스스로 해보도록 한다. 생각보다 준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밥 차린다고 하면 반찬 꺼내서 자기 식판에 담고 뭐 흘리면 수건을 가져와 닦는다. 옷의 지퍼도 끙끙대며 올리고 그네 탈 때 다리를 까딱까딱하며 반동을 주는 연습도 한다. 자동차 문도 열 줄 알고 현관 비밀번호를 눌러 집으로 들어온다. 비가 와 우산을 삐뚤 하게 써 한쪽 어깨가 젖어가는 걸 나는 두 눈 딱 감고 못 본 척하며 혼자 써보도록 내버려 둔다. 안전벨트를 매려고 낑낑대도 다 맬 때까지 참고 기다려준다.
아이는 분명 성장하고 있었다. 조그만 새싹이던 게 어느 순간 돌아보니 줄기를 내고 꽃을 피운 것처럼 우리 아이도 크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얘가 크고 있는 건가? 갸우뚱할 수 있지만 분명 자라고 있었다. 지금처럼 1mm씩 자라다 보면 '언제 이렇게 많이 컸지?' 하며 놀라워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준후의 1mm지만 눈부신 성장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