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정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일이다.
준후는 나와 하루 30분 정도 한글 공부를 하는데 정말 매일매일 해도 준후의 한글 실력은 늘지 않았다. 계속 배운 내용인데 처음 본다는 식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거 뭐야?"라고 물어보면 내 속이 뒤집어졌다. 모르는 건 차치하고 한 1, 2분 정도 앉아있으면 몸을 베베꼬고 책을 보고 있나 싶어 눈동자를 보면 딴 데를 쳐다보며 집중을 못하는 모습에 내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똑바로 앉아!”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걸 감지했는지 준후는 울먹거렸고 나는 오늘 공부 못하면 만화 못 볼 줄 알아라고 윽박질렀다.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엄마가 중얼거렸다.
“애 잡겠다.”
엄마의 말은 도화선이 되어 나는 마침내 폭발했다. 준후는 울고불고 엄마는 그런 준후를 달래준다고 당신의 품속에 쏙 넣었다. 준후는 자기편이 생겼다고 안심한 건지 더 서럽게 울며 외할머니한테 만화 보여달라고 떼를 썼다.
“꾸준히 하다 보면 준후도 한글 깨우치겠지. 넌 왜 그리 성급하니?”
“얘 한글 공부한 지 1년도 다되어가는데 아직 아무것도 읽을 줄 몰라. 내가 얼마나 속 터지는지 알아? 그리고 엄마가 나한테 그런 소리 할 수 있어? 엄마가 나한테 얼마나 무섭게 가르쳤는지는 생각 안 나?”
“내가? 난 그런 적 없는데.”
천연덕스럽게 발뺌하던 엄마는 준후한테 할미가 만화 보여줄 테니까 울지 말라고 토닥여줬고 나는 그런 엄마를 어이없이 쳐다봤다. 엄마가 나한테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를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어두컴컴한 안방을 먼저 떠올린다. 나는 그 안방 한가운데 두 손 모아 서 있고 그 앞에 지금보다 독기 가득한 엄마가 바닥에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다. 엄마의 손에는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빗자루가 들려있다.
그 빗자루는 길이가 30~40cm 정도 되는 작은 빗자루로 나무로 된 손잡이가 그립감 좋게 곡선을 그리고 있고 앞에는 말의 갈기처럼 갈색의 숱 많은 털이 박혀 있다. 그 빗자루는 참 요긴하게 쓰였는데 엄마가 방을 쓸다가도 나나 동생이 TV를 많이 보거나 놀다가 늦게 돌아오면 바로 털 부분 있는 곳으로 바꿔 잡아 우리의 허벅지나 엉덩이를 찰싹 때리는 데 쓰였다. 가볍지만 손잡이 안에는 옹골찬지 맞으면 따끔하면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고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은 날에 맞으면 그 손잡이 자국이 빨갛게 남아있기도 했다.
지금 엄마는 빗자루의 털 부분을 잡고 손잡이는 나를 향하고 있어 언제든 빗자루가 내 몸으로 날아올 기세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시계가 놓여있다.
“자, 지금 몇 시 몇 분이야?”
엄마는 시침과 분침을 움직이며 나에게 물었고 나는 안 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굴리며 초조하게 생각했다.
‘긴 바늘이 6에 있으면 뭐더라?’
기억이 날 듯 말 듯한데 내 눈에 밟히는 빗자루가 언제 내 다리를 강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만 들뿐이다. 내 앞에서 내 입만 맹수같이 노려보는 엄마 때문에 도저히 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응? 몇 시 몇 분이냐고. 빨리 대답 안 해!”
엄마가 빗자루를 방바닥에 탁탁 내리치며 내 대답을 독촉했다.
“4시... 6분?”
탁! 내 입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다리가 얼얼하다.
“4시 30분! 긴 바늘이 6에 있으면 30분이라고 아까 좀 전에도 말했잖아. 넌 어떻게 금방 배운 걸 모르니? 내가 너 때문에 못 살겠다, 정말!”
나는 그렇게 한동안 방에 갇혀 시계 보는 법을 배웠다. 배운 건지 아님 고문을 당한 건지 모르겠다.
엄마는 그렇게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나를 가르쳤고 나는 주눅이 든 상태로 책을 보는 건지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건지 정신을 못 차리며 공부하는 척을 했다. 당시의 엄마는 한 번 보면 이해할 줄 알아야 하고 한 번 배웠으면 그다음엔 당연히 외울 수 있어야 된다고 했다. 만약에 그걸 못하면 그건 네가 집중을 안 해서 그런 거라며 당연한 수순처럼 매를 들었다.
어릴 때는 두 번, 세 번 봐야 겨우 이해할 똥 말똥하고 여러 번 봐야 겨우 몇 자 외울 수 있는 내가 바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가 커지면서 내가 바보가 아닌 것을, 엄마도 저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의 엄마는 성급하게 가르치고 성급하게 배우길 바랐다.
지금이야 그땐 그랬지 하며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이런 엄마가 나한테 애 잡겠다는 소리를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애 잡은 사람은 엄마거든! 엄마가 나한테 했던 만행(?)을 이야기하면 엄마는 기억이 안 난다는 둥, 옛날엔 다 그렇게 가르쳤다는 둥 말을 얼버무리며 자리를 떴다.
요즘 준후의 공부를 봐주면서 준후한테 화내고 난 후의 내 모습에서 옛날 엄마 모습이 오버랩될 때가 많다.
‘난 나중에 내 자식한테 공부 강요 안 할 거야. 엄마처럼 무식하게 안 가르칠 거야.’
이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결국 엄마처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자책하기도 하고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을 때도 있다.(엄마처럼 매를 들고 있진 않다!) 어쩌면 준후도 내가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서 더 집중을 못하는 걸 수도 있겠다.
나중에 준후에게 어릴 때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하면 어쩌지.
“엄마가 공부를 무섭게 가르친 게 생각나요. 그때의 엄마가 미워요.”
매만 안 들었다 뿐이지 나랑 엄마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시계 보는 법을 배울 때 매 맞은 것보다 엄마한테 이거 하나 제대로 못 배운다고 무시당한 그 마음이 더 아팠다. 준후에게는 그때의 그 마음을,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오늘은 화를 내지 않고 가르쳐줘야겠다. 어제 했던 거 까먹었어도 그럴 수 있다고 다독여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