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쓴 『생각의 탄생』은 창의성이란 특정 천재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훈련할 수 있는 “13가지의 생각 도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과학자, 예술가, 발명가의 사례를 넘나들며 창의적 사고의 공통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중 특히 마음에 남은 건 관찰, 패턴 인식 그리고 추상화(抽象化)였다.
(직업병 중 하나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찾아 implication을 도출하는 것이다 보니 이 부분에 특히 눈길이 갔다)
무언가를 관찰하고, 다시 쪼개어 보고,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한 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 본질만 추려내는 과정. 이는 이 책 원서 제목인 'Spark of Genius'라는 표현과는 달리, 결코 즉흥적인 섬광(閃光)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깊은 몰입과 시간을 요구한다. 우리가 흔히 추상화(抽象畵)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피카소조차 비둘기를 완벽히 그리기 위해 수백 번의 스케치라는 몰입의 시간을 전제했음을 떠올리면 선명해진다.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보니, AI 시대에 입시 교육이 아닌 전인 교육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생각 도구들을 하나 하나 곱씹어 보고 싶지만, 오늘은 '추상'이란 단어를 키워드로 풀어보려 한다.
‘추상’
이상하게도 그 단어가 눈에 걸렸다.
'추상'이란 어떤 대상의 전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덜 띄는 한두개의 특성만을 나타내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5분짜리 얘깃거리를 가지고 하루종일 떠들 수는 있지만, 말할 시간이 5분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걸 위해서 하룻동안 꼬박 준비해 한다고 했다.
- 『생각의 탄생』中 '추상화'에 관한 내용 발췌 -
‘추상’이라고 하면, 나는 늘 피카소나 몬드리안 같은 추상화가들이 그린 대표작들을 떠올렸다.
형태를 단순화하고, 구체를 지워내며 본질만 남기는 그림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뭘 그렸는지 모를, 말 그대로 '추상적인' 그림들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일상에서 ‘추상적이다’라는 말은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다.
“너무 추상적이야.”
이 말은 칭찬이 아니라 비판일 때가 많다. 구체적이지 않다, 막연하다, 현실감이 없다는 뜻이다.
그 순간,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같은 단어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쓰이고 있을까.
사전을 찾아보면 더 분명해진다.
추상(抽象)
여러 가지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되는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하여 파악하는 작용
추상적(抽象的)
구체성이 없이 사실이나 현실에서 멀어져 막연하고 일반적인. 또는 그런 것
하나는 본질을 향한 사고의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불명확함의 상태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추상을 한다’고 말하기보다 ‘추상적이다’라고 말하는 데 훨씬 익숙하다.
추상(명사) 또는 추상하다(동사)와 추상적이다(형용사)의 영어 단어는 모두 abstract이다.
논문을 많이 쓰시는 박사님들이나 연구원생들이시라면, 논문의 핵심 요약문인 'Abstract'을 떠올려 보시면 '추상'과 '추상적'에서 내가 느낀 감정에 공감하실 지도 모르겠다.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건 단순한 언어 습관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언어의 기울기가 생긴 이유는 '추상화(抽象化)'를 어떻게 훈련받았는지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몰입해서 본질을 탐구하는 '추상'을 해본 적이 얼마나 있던가?
왜 우리는 '추상'을 모호함으로 이해하게 되었을까?
나는 이 질문의 답이 한국식 입시 교육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교육은 오랫동안 ‘정답을 맞히는 능력’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수능 문제를 떠올려보자.
“다음 중 글쓴이의 의도와 가장 일치하는 것은?”
이 질문에는 정답이 하나다. 의도는 하나여야 하고, 해석도 하나여야 한다.
이 구조에서 학생은 “나는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출제자는 어떤 답을 정답으로 설정했을까?” 또는 소위 말하는 "출제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5지선다의 보기 중에 빠른 시간 안에 정답을 고르기 위해, 사고는 점점 좁아지고, 해석의 다양성은 오답의 위험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 ‘추상’은 자연스럽게 불안한 것이 된다.
본질을 끌어올리는 사고는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추상'을 충분히 해볼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추상'이라는 단어보다는,
"그래서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야?"의 반대말인 '추상적이다'로 언어의 기울기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래서 다시 질문하게 된다.
AI 시대에, 지금과 같은 입시 위주 교육이 과연 맞는 방향일까.
최근 Anthropic의 공동 창업자인 Daniela Amodei는 인터뷰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실제로 현재 Anthropic에서 사람을 뽑을 때 소통 능력이 뛰어나고 높은 감성 지능(EQ)과 대인 관계 기술을 갖춘 사람, 그리고 친절하고 호기심 많으며 타인을 돕고자 하는 사람을 찾는다”라고 밝혔다.
JP Morgan Chase의 CEO Jamie Dimon은 "AI가 일부 일자리를 없애겠지만 젊은이들이 비판적 사고와 소통 능력, 글쓰기 등에 집중한다면 일자리는 충분할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문제는 AI가 빠르게 풀고 정답을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역할은 무엇일까.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AI가 가져온 답이 충분한지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가졌는가,
그리고 그 답을 다시 다른 맥락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
결국,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정답을 '다루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아이들을 ‘빠르게 맞히는 훈련’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제는 조금 다른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정답을 찾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 위해 읽고, 이해하기 위해 질문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해보는 공부.
'AI 디톡스 실험'의 말미에 적었던 것처럼, 빠른 답이 아닌 오래 가는 생각을 남기기 위한 공부.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는(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소유’하게 된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공부일지도 모른다. 나부터도 그렇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생각을 나눌 수 있을지.
걱정도 되지만, 그만큼 기대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