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설계 오답노트

관우의 봉화는 왜 꺼졌는가

by 류연X

최근 AI 디톡스 글쓰기 모임에서 친구가 흥미로운 글을 하나 공유했다. 모두가 잘 아는 삼국지 속 관우의 이야기였다.


관우는 형주성을 비우고 정벌에 나서면서, 자신이 구축한 혁신적인 '봉화 시스템'을 맹신했다. 적이 침입하면 봉화가 오를 것이고, 즉시 지원군을 보내 문제를 해결하는 당시로선 나름 완벽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적장 육손은 이 시스템의 허점, 즉 '봉화가 오르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파했다. 상인으로 위장한 소규모 부대가 봉화를 하나씩 조용히 점령해 나갔고, 관우는 자신이 만든 시스템이 무력화된 사실조차 모른 채 결국 파국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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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글은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시스템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보다 '실패하지 않는 것'이 1순위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을 읽으며, 애초에 시스템에 오류를 방지하도록 강제하는 도요타의 '포카 요케(poka-yoke)'가 떠오르면서, 동시에 묘한 서늘함이 함께 느껴졌다.


필자 역시 최근 회사의 경영관리를 맡으며 조직 곳곳에 여러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 가장 공을 들였던 부분은 조직 구성원들을 동기부여하기 위한 시스템들이었다.


포카 요케가 공정상의 '물리적인 실수'를 막는다면, 내가 고민하는 시스템은 사람의 '심리적인 변수'를 제어하는 포카 요케인 셈이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움직이겠지'라는 나의 낙관적인 설계가, 혹시 관우의 봉화처럼 '작동하는 척'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서늘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그리고 지속 가능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던 흔적들을 남기기 위해, 나만의 동기부여 시스템 오답노트를 case study 하듯이 기록해 보려한다.


Case 1: 차량 정비비 절감 (부정적 강화 사례)

(1) 문제상황

지난 해 인수한 운반업체에서 차량 정비비가 과도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내역을 살펴보니, 사고로 인한 정비나, 멀쩡한 부품까지 통째로 갈아버리는 소위 앗세이(Ass'y) 교체가 잦았다.

어찌 되었든 목표는 명확했다. 차량 정비비 절감.


(2) 해결책(동기 부여)

일차원적으로 정비비가 싼 정비소를 찾거나, 기사 분들을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아예 차량 정비 프로세스를 '매우 귀찮게' 만드는 시스템을 설계했다. 왜 고장이 났는지, 어떤 부품을 비교견적을 통해 가장 저렴하게 구했는지 등 일련의 과정을 모두 품의서와 기안서에 담아 결재받게 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기사들은 귀찮은 서류 작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예전처럼 쉽게 통으로 부품을 갈지 않았고, 불필요한 교체도 줄어들었다. '귀찮음'이라는 friction을 통해 낭비하는 동기를 억제한 부정적 강화의 첫 사례였다.


(3) 발생 가능한 오류와 해결책

하지만 이 시스템에도 관우의 봉화와 같은 허점이 있다. 프로세스가 너무 귀찮아지면, 기사들이 안전과 직결된 정비마저 미뤄버리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시스템의 실패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비비를 '예방적 정비비'와 '사후적(사고/고장) 정비비'로 구분해 집계하기 시작했다. 만약 예방 비용을 너무 안 쓴다면 alarming이 되도록 설계했다. 시스템의 부작용을 다시 시스템으로 막으려고 한 셈이다.


한 줄 요약: Friction을 통한 비용 통제는 강력하지만, 그로 인해 '필요한 비용'까지 억제되지 않도록 하는 모니터링을 반드시 병행해야겠다.


Case 2: 선의의 경쟁(긍정적 강화 사례)

(1) 문제상황

영업팀의 신규 거래처 발굴을 위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단순히 '팀 단위'로 목표를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성과평가의 근거로서도 부족했다.


(2) 해결책(동기 부여)

매월 담당자 별로 누가 몇 개의 거래처를, ASP는 얼마로, 총 금액 얼마를 달성했는지와 계획 대비 진척도를 투명하게 공시했다. 서로 비교 경쟁이 되게 하여 인정 욕구를 자극했다.


(3) 발생 가능한 오류와 해결책

이 시스템 역시 완벽하지 않다. 비교 경쟁은 자칫 하위권의 의욕 상실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고, 승자 독식으로 인해 팀 전체의 퍼포먼스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단순히 절대적인 퍼포먼스 외에도, 전월비 성장률 1위나 최고 단가 계약 달성 등 다양한 시상 카테고리를 만들어 모든 구성원에게 성취감의 기회를 부여하면 좋을 것 같다.


한 줄 요약: 비교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기도 한다.


Case 3: 원칙으로 움직이게 하기(개인의 동기 차단 사례)

(1) 문제상황

자회사 인수 후 본사 영업팀과 자회사 간의 영업 시너지를 창출해야 했다. 처음엔 "큰 틀에선 본사가 총괄하되 세부 사안은 영업팀장과 자회사 담당자 간에 협의하라"는 두루뭉술한 가이드를 줬다. 결과는 처참했다. 자율적인 '협의'는 매 순간 '협상'이 되어 각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갈등이 쌓였고, 몇 달 뒤에는 인간적인 감정마저 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 해결책(동기 제거)

중재자로 역할을 하다 지친 나는 아예 구성원 개인이 판단할 여지를 없애는 세부 프로토콜(업무 지침서)를 만들었다. "이럴 땐 본사 영업팀장이 전권, 저럴 땐 자회사 독자 수행"을 사례별로 못박아 애초에 '협의'할 일을 없앴다.

이미 지난 수개월 동안 여러 case에서 '협상'을 해왔던 탓에, 대부분의 프로토콜 자체는 기존에 양사가 해왔던 것과 사실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좋았던 점은 프로토콜을 정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니즈와 쌓였던 감정들을 털어놓으면서 해묵은 감정도 씻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프로토콜을 일방적으로 정해 툭 던져주었다면, 또다른 반발이 생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 당사자들 모두를 참여시킴으로써 그 규칙을 강요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합의한 해결책'으로 만들었다.


(3) 발생 가능한 오류와 해결책

프로토콜로 해결이 안되는 '그레이 존'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예외사항은 아예 제3의 고위 의사결정권자인 본사 임원이 최종 판단하게 escalation rule을 설계했다.


한 줄 요약: 갈등이 예상될 때는 '자율적 합의'보다 '명확한 규칙'이 평화를 만든다. 개인의 동기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는게 때로는 최고의 시스템이다.


현 직장으로 이직한 후 운이 좋게도 대기업 기조실 출신의 훌륭한 멘토를 만나 가장 많이 배우고 있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차원적인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재발 방지와 영구적인 해결책을 위한 시스템 설계를 고민하는 법이다.


모든 시스템은 결국 사람이 움직인다.

사람의 심리적인 작동 기전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시스템은, 아무리 혁신적이라도 관우의 봉화처럼 무너질 수 있다.


앞으로 내가 설계해 나갈 시스템이 더 단단하고, 무엇보다 더 인간적인 시스템이 될 수 있도록,

오늘 이 오답노트들이 든든한 주춧돌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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