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이 나에게 말했다.
“침묵 게임 하자.”
그리고 “시작”이라는 말과 함께 게임이 시작됐다.
아무도 게임을 끝내지 않았다.
나는 물었다.
“왜 다들 말 안 해? 장난치는 거야?”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 애들은 나를 보고도, 나를 보지 않았다.
다른 날에는 침묵 게임이 끝난 자리에
새로운 놀이가 들어왔다.
“말 따라 하기 게임이야.”
아이들은 내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따라 하지 마”라고 하면 그 말까지 따라 했다.
내가 싫다고 말할수록, 더 정확한 목소리로 복제했다.
수업이 시작되고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조용히 해.”
마지막까지 말한 건 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교실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람은 늘 나였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시비조로 말을 걸었다.
내가 반응하면 그걸 또 따라 했다.
내 말은 내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입에서 되풀이되는 메아리가 됐다.
나는 서서히 망가졌다.
어느 순간, 나는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말 따라 하기 게임 위에 더 큰 규칙이 세워졌다.
더 욕을 잘해서 상대방을 상처주기 게임.
나는 이제 게임에 참여한 사람이 아니라
게임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가 됐다.
생각해 보면, 그보다 더 어릴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이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하던 날.
“찾는다~”라는 말이 들렸고,
나는 숨기에 몰두했다.
너무 잘 숨어버린 나는,
화단에서 누군가가 싼 똥을 밟은 줄도 몰랐다.
뒤에서 “똥냄새난다”는 말들이 오가는 줄도 몰랐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나는 숨었고,
그들은 ‘찾지 않는 놀이’를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나를 깔아보던 친구를 따라 전학을 갔던 날부터였을까.
나는 그때, 세상이 바뀌면 나도 바뀔 거라고 믿었다.
토끼가 토끼들을 따라 토끼굴로 들어가면
같은 토끼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토끼굴 안에는 규칙이 있었다.
먼저 들어간 토끼들에 의해
나는 강제로 여우 역할을 맡아야 했다.
몸에 꽉 끼는 여우탈을 쓰고,
내 안의 토끼를 물어뜯어야 했다.
가엾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