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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May 19. 2024

예상 밖 장보기


서울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장이 선 것을 보았다. 엄마가 일전에 사 온 김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식을 전했다. 엄마는 그렇다면 함께 가보자고 했다. 이미 만 보를 훌쩍 넘게 걸어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김을 누구보다도 맛있게 먹었던 장본인이었기에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과 산책하는 사람, 유아차를 밀고 가는 사람과 바쁘게 집을 향하는 사람들을 피해 옆 옆 단지까지 부지런히 걸어갔다. 단지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도 늘어났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이쪽저쪽에서 쿵쾅거렸다. 나는 내가 보고 지나갔던 점포의 기억을 더듬어 김이 있을 만한 곳으로 엄마를 이끌었다. 분명 쥐포 옆에서 김을 봤다. 그런데 쥐포 옆에는 다시마가 놓여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점점 더 빨리 걸었다.


“이상하네……. 분명 쥐포 옆에 있는 걸 봤는데…….”


먹거리를 사려고 줄 선 사람들을 지나고 간이 포장마차를 지났다. 액세서리 점포들을 건성으로 훑으며 게임 코너까지 통과했다. 놀이 기구가 설치된 지점이 끝이었다. 더는 가볼 길도 없었다.


“다시마라도 사갈래……?”


나는 머쓱해져서 말했다. 엄마가 좋다 싫다 대꾸가 없어서 더 뻘쭘해졌다.


“번거롭게 괜히 나왔네. 피곤하게 했다. 잘 좀 볼걸.”


좀 전보다 더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왔던 길을 돌아가며 나는 작게 툴툴거렸다.


“운동한 셈 치는 거지.”


여상스러운 목소리에 괜히 더 기분이 가라앉았다. 다시마를 사러 온 우리 앞에는 미역이 놓여있었다. 판매자가 두 봉지를 사면 값을 깎아주겠다고 흥정했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카드를 내밀었다. 흥이 난 그는 우리에게 백화점에 들어가는 쥐포라며 시식을 권했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어서 엄마랑 나랑 먹자마자 눈부터 마주쳤다. 우리는 쥐포도 만 원어치 사서 집으로 향했다.


“쥐포가 비싼 건데.”

“비싸지. 휴게소 가면 이거 한 장에 오천원 씩 한다잖아. 근데 미역을 왜 두 봉지나 샀어.”

“미역은 두고 계속 먹으니까. 그리고 엄마 이 미역 좋아해.”


집에 들어오자마자 동생 방문을 열고 너 좋아하는 쥐포를 사왔으니 구워 먹으라고 말했다.


“너도 먹고 아빠도 주고. 아빠는 많이 먹으면 안 돼. 조금만 줘.”


동생이 쥐포 봉지를 열며 갑자기 웬 쥐포냐고 호들갑을 떠는 사이 엄마가 나직이 말했다.


“근데 그걸 어디다 구워 먹어.”

“아.”


나는 멍하게 인덕션을 쳐다봤다. 그런 내 뒤를 스쳐서 엄마가 세탁실로 들어갔다.


“부르스타에 구워먹어.”

“아…….”




2024. 0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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