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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May 18. 2024

겁 없던 아이


어린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자주 놀란다. 어쩜 저리 겁이 없는지.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지 좀처럼 실감할 수 없다. 아이들은 아무 데나 오르고 뛰어내린다. 도로를 단숨에 가로질러가며, 생각지도 못한 곳에 매달린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서 심장이 덜컹 내려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기분을 느끼기 시작한 건 길게 잡아봐야 10년도 되지 않았다. 나도 꽤나 겁이 없던 아이였다. 높은 담장 위를 길인 양 걸어 다녔고 아무 데서나 훌쩍훌쩍 뛰어내렸다. 철사를 구부려 만든 그물을 타고 올라가서 숲길도 많이 헤집고 다녔다. 돈을 뺏는 불량배들이 나타난다는 말에는 몸을 사려도 높은 곳에서는 겁먹은 적은 없었다. 놀이터에 설치된 놀이기구의 가장 높은 곳에서 몇 번이고 뛰어내리는 것이 나의 놀이였다. 그 시절의 경험은 생각보다 오래 유효해서 고등학교 점심시간 때, 무단외출 단속을 잡으려고 나온 선생님의 눈을 피해 교실 건물로 바로 이어지는 비밀의 길로 친구들을 이끌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간도 크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그때는 8개 계단 위에 있든 담장 꼭대기에 있든 뛰어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 확신이 어디서 생겨나는지가 참으로 미스터리할 뿐이다. 놀이기구도 물론 무서워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 이것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니 재미를 잃었다. 차를 함부로 얻어 타지 않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다. 남의 차를 타다가 목숨을 잃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도감을 즐기거나 신호 위반을 예사로 하는 운전자들의 호의는 마음만 받고 고사하게 됐다. 그러고는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뛰어내릴 수 있지?” 하다가 “어떻게 저런 곳에서 뛰어내린다고 놀랄 수 있지?” 하고.



“넌 생각 안 나 우리는 지붕 위에서 걸어 다녔잖아, 그래도 우리는 떨어질까 봐 겁낸 적이 없었어.”
“그땐 어렸고, 현기증이란 걸 몰랐지. 지금은 다르잖아, 어서 내려와!”
그가 웃는다.
“걱정 마, 난 안 떨어져. 난 날 수가 있거든. 나는 밤마다 도시 위를 날아다녀.”
그는 두 팔을 치켜들고, 펄쩍 뛰어오르더니, 뜰에 서 있는 내 발아래로 떨어진다.

_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483쪽





2024. 0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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