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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May 20. 2024

환장의 팀워크


내가 속한 모임은 종종 눈에 띄는 편이었다. 여러 팀과 함께 장기자랑을 나가도 “쟤들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하는 말을 듣는 팀이 바로 ‘우리 팀’이었다. 특별하게 눈에 띄었던 ‘우리 팀’들을 비교해 보면 비슷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완벽한 역할 분담’이었다. 사람 대 사람 간의 궁합이나 취향의 일치, 애정을 쏟는 깊이 등도 물론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맡은 역할의 조합이 팀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컸다. 이 역할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부여되어서 작용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이 때문에 환상의 팀워크를 운명이나 행운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미리 짜기라도 한 듯 서로의 장점을 끌어내는 조합으로 멤버가 구성되어 있다면 그 팀은 당연히 보통의 속도로 굴러갈 수 없었다. 약간의 상호작용만으로도 폭발할 듯한 에너지가 방출되기 때문이다.


내가 10년 넘게 정기적인 만남을 유지하고 있는 모임에는 나를 포함해 다섯 멤버가 있는데, 우리가 ‘사고’를 치는 경로는 늘 비슷했다. 우선 한 멤버가 이러저러한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운을 띄운다. 리액션이 좋은 한두 명이 열심히 호응하며 듣고, 나머지는 현실적인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적당히 맞장구친다. 그러다가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은 멤버 하나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행동파인 친구가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치며 자신이 당장 해볼 수 있는 일을 열거한다. 계획 짜기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가 앗싸리 마감일을 잡고 역할 분배를 시작한다. 이미 한 명은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리액션이 가장 좋은 멤버가 이건 정말 될 거라며, 우리는 정말 엄청나다고 숨 쉴 때마다 우리 모두를 추켜세운다. 맨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멤버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너 또 질러놓고 발 빼고 있는 거냐고, 뒤늦게 말이 나오지만 이미 일이 시작되었기에 어느 누구도 그만둘 생각이 없다.



2024. 0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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