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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May 21. 2024

환장의 팀워크2

뜨겁지만 해롭지 않은, 집요하지만 싫지 않은


시간이 나는 틈틈이 노션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사용할 기록 템플릿을 만들기 위해서다. 노션은 거의 초보 수준이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자꾸 무언가의 시도를 해보는 것은 함께 쓰는 템플릿을 그만큼 갖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가끔 영상을 만들기도 하면서 함께 한 시간을 기록해 왔다. 그만하면 충분할 것도 같건만, 어째서인지 나는 만족하지를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 있을 것 같다. 기록에 집착하는 인간형이라 드는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넷이고, 저마다 특별하게 집착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은 대개 우리 취향의 교집합이 된다. 우리는 모두가 극 내향형인 인간인데, 교집합인 취향 앞에 서면 저돌적인 외계인이 된다. 얘기할 때마다 불타오르고, 맑눈광이 되어 보란 듯이 영역을 넓혀간다. 점점 더 목표가 커져서 혼자였다면 생각해보지도 못할 일을 벌인다.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동류가 되고, 한번 질렸다고 떠나갔던 이가 제 발로 돌아와 합류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기막혀한다. 감탄한다. 좋아한다. 우리로서도 알 수 없는 힘이 우리를 감싼 채 발광하고 있다. 가끔은 우리 자신도 감당하지 못해서 휘청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거꾸로 떨어지는 놀이 기구에 스스로 탑승한 사람처럼 깔깔거리며 자조적으로 묻는다. 이게 뭐야? 어쩌다가 이렇게 됐어? 누가 시작했어? 1박 2일 독서모임도, 하루에 독서 모임 두 탕 뛰기도, 책방투어, 뜨개질, 빈티지 사진 찍기, 드라마클럽, 추리반 클럽 등 우리가 열렬하게 빠져들었던 모든 일은 같은 동력으로 이어져왔다. 뜨겁지만 해롭지 않은. 집요하지만 싫지 않은.


그 속에서 나는 꿋꿋하게 기록과 연관되는 부분을 맡고 있다. 새로 산 다이어리가 아주 좋다고 디자인도 색도 똑같은 제품을 필기구에 리필심까지 챙겨서 선물했던 전적은 이미 오래된 일이 되었다. 나는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다. 신선한 사건을 만들어 친구들을 끌어들이고 싶다. 아무도 시킨 적이 없는 노션 템플릿을 공부까지 해가며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이유는 오로지 그 때문이다. 우리가 같이 해볼 수 있는 일은 너무도 많았고, 나는 미루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나만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서로 달라 보여도 결국은 어딘가 닮은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다고, 우리는 서로에게서 자신의 영혼을 자주 발견하는 편이다. 우리 중 하나가 발광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홀랑 다 타버릴 것이다. 그러기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리 되고 말 것이다. 자신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에너지에 놀라며, 자신에게 광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하릴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24.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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