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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Apr 19. 2024

돌덩이를 밀어내는 시간

마음에는 미움, 몸은 자투리도 되지 못한 삶


하루하루의 여백이 크게 느껴진다. 먼슬리 다이어리의 한 칸 정도 되는 공간도 넘어야 할 산인 것만 같다. 기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발 앞에 분수대만큼 커다란 돌덩이가 놓여있고, 그걸 밀어야 뭐라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돌은 무겁고, 멀어내고 나면 어떤 일도 실행할 만한 기력이 남아있지 않다. 몸과 마음과 머리를 추슬러 겨우 일어날 결심을 하면 아까 그 돌덩이가 발 앞에 또 와 있다. 하루는 돌덩이로 채워진다. 돌덩이가 주인이가 내가 그를 막는 방해물인 것처럼 느껴져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돌덩이를 밀어내는 시간은 기록되어도 의미가 없다. 밥을 벌어먹고 사는 데 현실적인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일기장에서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해서라면 이미 너무 많은 글을 써왔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진부해서 꺼내지 않는 이야기. 나조차도 읽지 않는 책. 입에 발린 우울. 잘못된 몽상. 기이한 발진. 마음에는 미움. 몸은 자투리도 되지 못한 삶.


원망은 방향이 없다. 돌덩이는 무적이고, 마주하는 모든 것을 깔아뭉갤 준비가 되어있다. 사람말고 돌로 태어났어야 했다. 돌이 못 되면 둘이라도 됐어야 했다. 돌은 무겁고, 나는 내가 둘이나 셋이 되는 꿈을 꾼다. 여섯 개의 손이나 여덟 개의 다리 같은 걸 상상한다. 돌덩이 아래로 발가락을 밀어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며. 돌덩이의 시간은 기록되지 않고, 일기장은 여백으로 채워진다. 내 일기장은 가득하다.



2024. 0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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