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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May 08. 2024

포기할 수 없는 시간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

비비언 고닉, 『짝 없는 여자와 도시』를 읽다가


비비언 고닉은 『짝 없는 여자와 도시』에서 우정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중에서도 레너드와의 일화들이 인상적인데,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어 있는 사람들(8쪽)”이라는 기질적인 공통점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자아상을 투사”하는 독특한 관계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20년이 넘도록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만남을 가져왔는데, “살면서 나눠본 대화 중에 가장 흡족한 대화를” “단 일주일이라도 포기할 수가 없(7쪽)”었기 때문이라고 고닉은 쓰고 있다. “그토록 강렬하게 이끌리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 그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느끼는 방식이니까.(7쪽)”, 이어지는 문장은 친구라는 관계와 대화의 의미에 대해 동시다발적인 물음표를 던진다. 이는 곧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은 뒤 나는 유독 대화라는 행위를 곱씹어 생각했다. 잡담과 대화를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 가져온 터였다. 서른 중반을 넘어서고부터는 실천적인 단계로 넘어가서 뒷맛이 껄끄러운 만남을 꾸준히 정리해오기도 했다. 돌아서면 찝찝한 기분을 남기는 사람들, 썩 내키는 건 아니었는데 손바닥을 마주쳐야 했던 순간들. 그딴 말 왜 했지? 왜 가만히 듣고만 있었지? 걔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긴 하나?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지도 모른다는 치열하고 엄격한 자기 검열 속에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던 물음표들을 나는 오래 지워왔다. 그렇게 외톨이가 되어도 어쩔 수 없겠다고, 마음에 비관적인 하늘이 뜨는 날에는 의연한 척 체념하기도 하면서.


어느 날에는 정말 혼자가 되었구나 실감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걸 내가 스스로 알 때까지 알려준 친구들이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고닉이 레너드를 소개하던 글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 같은 페이지에 관한 이야기만 세 번 네 번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모임이 너무 멀게 느껴져서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어 만날 기회를 만들고 있는 친구들이 사랑스럽다. 아무래도 포기할 수 없는 시간의 화살표가 서로를 향해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고닉은 “우정이든 사랑이든, 핵심은 사랑하는 이가 존재할 때(최선의 자아까지는 아니더라도) 표현하는 자아가 꽃을 피우리라는 기대다.(87쪽)” 라고 썼다. 그래서 나도 이 글을 썼다.



2024.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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