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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동해시 주요 공장 실태

by 강동수

우리나라의 근대 공업은 일제의 식민지 공업정책에 의하여 본래부터 기형적인 공업구조를 지니고 있었는데 해방과 더불어 일제의 퇴거와 남북한의 분단으로 공업구조의 기형성은 더욱 격화되어 우리나라의 공업은 심한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강원도는 원래부터 공업의 발전이 타도에 비하여 부진하던 터에 해방으로 인한 타격이 가중되었다. 즉, 해방은 종속적 경제체제를 자주적 경제체제로 전환시켰어야 했는데 해방 이전에 형성된 기형성으로 말미암아 일본 자본에 대한 종속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온 강원도의 공업은 그 명맥의 유지마저 단절되어 버렸다. 회사 투자의 90% 이상을 점하던 일본 자본과 전체의 80%를 점하던 일본 투자자들이 총퇴진한 결과 공업생산력은 결정적인 파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해방 직후 1947년의 강원도 공업은 제사(製絲)와 펄프 공업 등이 비교적 활발히 운영되어 그 명맥이 유지되었는데 제사의 경우 도내 총 수요량은 연 50,000관(貫, 미터법으로 약 3.75kg)이었는데 도내 생산능력은 10,000관 공급이 최대한도였다.


춘천에 있는 춘천방직공장은 도내 최대규모의 공장으로서 각종 험로를 무릅쓰고 근근히 가동되고 있었으며 영월의 동서펄프, 원주주정 그리고 강릉, 주문진, 울진의 통조림 공장은 영동지방의 수산업 발전과 아울러 당시에 크게 기대되고 있던 업체들이었다.


그 외엔 삼척시멘트 공장이 1947년 8월 1일부터 활발히 가동되어 매월 10만 대(袋, 부대) 이상을 생산했다.

1960년대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 구 삼척시멘트).jpg 1960년대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 구 삼척시멘트)


참고로 해방 직후의 강원도 내 25개 주요 공장 실태 중에서 현 동해시(옛 삼척군 북평읍, 강릉군 묵호읍) 소재 공장은 4개소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방 직후 도내 주요 공장 실태(1947년)


업종별 / 공장명 / 소재지 / 종업원 수 / 소유자(현 관리인, 전 일인 소유자) / 생산품명


1. 기계 / 삼화제작공사 / 삼척군 북평읍 쇄운리 / 222 / 정우익(鄭友益), 시천은장(是川銀藏, 고레가와 긴조) / 농기구, 연와(煉瓦), 기타

2. 조선공업 / 삼공조선소 / 강릉군 묵호읍 묵호리 / 13 / 원해룡(元海龍) / 기범선(機帆船), 부선(艀船)

3. 유기가공(有機加工) / 북양제염조합 / 삼척군 북평읍 / 168 / 김상현(金相鉉) / 식염

4. 유기가공(有機加工) / 묵호제염조합 / 강릉군 묵호읍 / 150 / 김진수(金鎭壽) / 식염


〈참고문헌〉

강원도, 『강원총람』, 1975.

삼척시립박물관, 『삼척의 구술현대사 1』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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