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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대관령 도로준공 기념비

by 강동수

강릉에서 대관령 구 고속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왼쪽에 대관령 옛길, 반정(半程) 표지석이 보이고 그 맞은편 약간 위쪽에 ‘준공기념(竣工紀念)’을 새겨 놓은 큰 바위가 눈에 띈다.


image01.png 대관령 도로준공 기념비 Ⓒ강동수


이 도로준공 기념비와 관련하여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토목사업지』(1937)에 있는 「##」에 따르면 경기도 이천에서 강원도 강릉 간 2등 도로 개수(改修)를 도로 폭 5.4m, 구간 거리 190.47km, 기공 연도 1911년, 준공 목표 연한은 5개년으로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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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121-1.jpg 조선토목사업지, 조선총독부(1937)


그러나 실제로 대관령 도로 개수(改修)는 1912년 4월에 착공하여 1916년 3월 준공 예정이었으나 대관령이라는 지형적 제약 조건 외에 1916년 8월 10일 발생한 대홍수로 인하여 1917년 8월 30일에 준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발생한 대홍수로 인하여 평창~강릉 간 공사 구간이 유실되어 공사청부인 시미즈 탓페이(淸水辰平)가 큰 손실을 무릅쓰고 복구공사를 재개하다가 병으로 사망하게 되고 그의 동생인 시미즈 토요마츠(淸水豊松)가 최종적으로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이러한 공사 과정이 기록되어 있는 도로준공 기념비의 성격은 1917년 9월 15일 자 『부산일보』에 수록된 〈강릉 소개호 제2: 토목청부업 고(故) 청수진평(淸水辰平) 군〉의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전략) 군(君)의 죽음에 대해서 누구도 애석해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군이 생전에 다수의 공공사업에 금품을 기증하여 이를 지원했던 일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니 군(君)은 죽어서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아름다운 이름은 만금(萬金)보다도 더욱 귀하며 참으로 안타까운 인물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공사는 군(君)의 아우 토요마츠(豊松) 군이 계승하여 유감없이 준공하고 이즈음 검사도 마쳤으므로 군 생전의 사업의 발자취를 돌이켜 생각하며 그 공적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각 유지의 발기에 의해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jpg 1917년 9월 15일 자 『부산일보』, 〈토목청부업 고(故) 청수진평(淸水辰平) 군〉


강릉시에서 설치한 대관령 도로준공 기념비 안내문에는 일제시대 대관령 구간에 근대적인 도로를 만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글을 새긴 비석이라고 되어 있으나 위 기사의 내용을 보면 시미즈 탓페이의 공적과 희생정신을 보여주기 위한 개인 공적 기념비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2.jpg 대관령 도로준공 기념비


〈참고〉 이 글에 기록된 도로 공사와 관련한 연월일이 강릉시 안내문의 공사 연월일과 서로 다른 점은 민족문제연구소의 견해를 따랐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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