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과 1964년의 달라진 삼화사 사진 소개
동해시에 소재한 삼화사에 대하여 여러 기록이 전하는데 그중에서 몇몇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진주지』는 신라 선덕왕 11년(642)에 자장율사가 흑련대를 창건하여 그 시초가 되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라말 굴산사의 개창주인 범일국사가 삼공암을 창건하였고 이후 고려 태조가 삼화사라고 하였다 하며, 『척주지』에는 신라 흥덕왕 4년(829)에 범일국사가 불사를 지어 삼공암이라고 하였다 한다.
대략적인 삼화사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642년(선덕왕 11년) 자장율사가 세움.
829년(흥덕왕 4년) 3선이 두타산에 와서 청련대, 백련대, 흑련대 라고 하였고 약사불이 서역으로부터 삼화, 지상, 궁방에 주지함.
864년(경문왕 4년) 범일국사가 불사를 건립하고 삼공암으로 현판함.
고려 태조가 삼국통일을 이루고 절 이름을 삼화사로 함.(『신증동국여지승람』)
1287년(충렬왕 13년) 이승휴가 삼화사에서 불경을 열람하고 『제왕운기』를 저술함.
1369년(공민왕 18년) 사찰을 확장함.
1395년(태조 4년) 수륙대재를 설행함.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시에 불타고 중대사로 이전함.
1657년(효종 8년) 재건함.
1820년(순조 20년) 산불로 소실됨.
1821년(순조 21년) 삼척부사 이규헌이 중건함.
1829년(순조 29년) 산불로 소실됨.
1830년(순조 30년) 중건함.
1907년(대한제국 11년) 의병 봉기 때 왜병의 방화로 소실됨.
1908년 중건함.
1977년 쌍용광산개발로 현 위치로 이전함.
삼화사는 어느 대찰에서도 찾아볼 수 없듯이 고려와 조선 두 왕조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영동 남부의 중심사찰로서 지역사회와 밀접한 유대관계를 형성하였고, 수차례의 화재와 전란으로 소실되고 복원되는 험난한 역정을 견디어 온 명찰이다. Ⓒ『동해시근현대사료집』
이러한 오랜 역사성을 가진 삼화사에 대한 사진 2장이 『김근원 산악포커스』에 실려 있는데 1961년과 1964년의 3년 사이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삼화사가 이상할 정도로 폐허가 되어 있었다고 하며 그 사진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