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장의 사진(17)

영화 〈삼포 가는 길〉 중 삼화제철공사 장면

by 강동수
영화 삼포 가는길(1975) 중 삼화제철.jpg 도망친 작부 백화(문숙)가 삼화제철 옆 철길을 따라 걷고 있는 장면. Ⓒ〈삼포 가는 길〉


〈삼포 가는 길〉은 황석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만희 감독의 1975년 개봉 영화이며 한국 영화사에서 흔치 않은 로드 무비로, 사실상 한국 로드 무비의 시초격인 작품으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공사장을 떠돌아다니는 젊은 노동자 영달(백일섭)은 밥집 여주인과 바람을 피우다 들켜 도망 나온다. 영달은 눈밭에서 옷을 입다 중년의 정 씨(김진규)를 만난다. 정 씨는 교도소를 나와 10년 만에 고향 삼포로 향하는 길이다.


눈길을 헤치고 걸어가던 두 사람은 시장기를 때우러 식당에 들르고, 여주인으로부터 도망친 작부 백화(문숙)를 붙잡아주면 돈 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눈보라를 헤치고 걸어간 끝에 그들은 다리 밑에서 백화와 마주친다. 백화가 호락호락하지 않아 영달과 줄곧 티격태격하지만, 세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나기로 한다.


정처 없이 눈길을 걷던 그들은 폐가에서 하루 묵기로 한다. 모닥불 앞에서 영달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예민해진 영달과 말다툼을 한 백화는 읍내로 내려가 버린다. 백화를 찾으러 읍내로 내려간 정 씨와 영달은 선술집에서 싸우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다. 정 씨는 아버지인 척 연기해 백화를 구해낸다. 그날 밤 영달과 백화는 같이 잠자리한다. 백화는 영달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만, 영달은 장바닥에 그녀를 떼어놓고 역으로 가버린다. 백화가 역으로 찾아오자 영달은 돈을 털어 기차표를 사준다. 하지만 백화는 기차를 타지 않는다. 영달은 일꾼들을 만나 공사판으로 떠나고 정 씨는 큰 다리가 놓인 삼포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한국영상자료원


이 영화의 후반부에 여주인공 백화가 1975년 당시 현 동해시에 있었던 삼화제철공사 옆 철길을 걷고 있는 장면이 필자로서는 특히 인상적이었으며 남한 최초의 제철소였던 삼화제철공사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화제철공사는 삼척 지역에서 발달한 중화학 공업은 삼척에서 생산되는 지하자원과 관련이 있었다. 삼척에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을 제철하기 위한 삼화제철공사(三和製鐵公社)가 있었다. 삼화제철 공장은 무릉계곡 부근인 삼화와 양양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을 제철하기 위한 공장으로, 현재의 동해시 북삼동에 1943년 4월 25일에 건립되었다.


일제는 1930년대부터 군비확장에 따른 막대한 철강재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제철소를 건설하였다. 1940년에 미국이 고철(古鐵)에 대한 금수조치를 취하자 일제는 이에 대응하여 철강 소재의 공급원을 확충하는 사업을 추진하였고 그 일환으로 설치된 것이 고레가와제철(是川製鐵)의 삼척공장이었다.


해방이 되면서 삼화제철이 삼척공장을 운영하게 되지만, 1948년까지는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 전력과 원료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기술자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1949년에 삼화제철은 1만t 규모의 선철 생산을 목표로 보수공사를 시작했으나 1950년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


삼화제철은 1952년과 1953년에 부흥 사업비 3억 4357만 환을 투입하여 8기의 고로 중에서 3기를 보수하고, 1954년부터 가동하였지만 석 달도 되지 않아 연료난과 자금난으로 1957년까지 휴업하게 된다. 이에 정부는 2억 4800만 환을 들여 고로 1기를 국산 무연탄으로 선철 생산이 가능하도록 전환하였고, 다른 1기는 유연탄과 무연탄을 혼합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였다. 한편 삼화제철도 1959년과 1961년에 고로 1기를 추가로 보수하여 1961년 이후에는 4만 8000톤의 선철 생산능력을 갖추고 1971년까지 고로를 가동하였다.


1960년대에는 삼화제철소 외에도 10여 개의 소규모 공장이 선철을 생산하였지만, 고철을 이용하여 재생 선철을 생산하는 것에 불과하여 진정한 의미의 제선공장은 삼화제철소 뿐이었다. 더욱이 이러한 삼화제철소 고로 운영 경험으로 향후 우리나라 철강산업에서 제선 부문을 담당할 수 있는 우수한 기술 인력이 배출될 수 있었다. 삼화제철소 고로는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명맥을 이어온 가교 구실을 하였다.


1~7호기는 1973년에 동국제강이 삼화제철을 인수하면서 생석회 소성용으로 전환되었다. 현재 문화재로 등록된 8호기는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1991년에 대동건설이 삼화제철 부지에 대동아파트 건립을 추진하면서 고로가 철거될 상황이 되어 포스코가 고로를 인수한 후 이전하였다. 삼화제철소 고로는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매우 중요한 상징물로서 2005년 11월 11일 등록문화재 제217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디지털삼척문화대전」


2005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는 1943년 일본의 고레가와제철(是川製鐵)이 강원도 삼척(현 동해시)에 공장을 건립한 뒤 설치한 소형 용광로 8개 가운데 하나이며 고레가와제철은 광복 후 삼화제철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3년 포스코가 인수해 원형을 복원한 뒤 2003년부터 포스코역사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하고 있다. 남한에 건립한 용광로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용광로이다. 포항제철이 건립되기 전까지 하루 20t의 선철을 생산하며 국내에서는 유일한 용광로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나라 제철 기술과 제철공업 발달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는 산업시설물로 역사적·산업적 가치가 높다. Ⓒ「국가유산포털」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홍협.jpg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 Ⓒ홍협


〈참고〉 고레가와 긴조(是川銀藏)


1938년 7월 한반도로 이주한 고레가와 긴조(是川銀藏, 1897~1992)는 미츠비시광업(三菱鑛業)과 조선총독부 지질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광업 개발 지식을 익히면서 철광산 탐사에 나섰다. 철광산 개발을 위해 12명의 자본가를 동원하여 ‘조선광업개발조합’을 결성하고 1939년 3월 현 동해시(당시 삼척군 북삼면)에 있는 철광산 2개 광구의 광업권을 이전받았으며 1940년 삼화철산 사무소를 설치하고, 동철광 2.95㎢와 철광산 2.85㎢에 대한 광업권도 설정하였다.


1942년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용광로를 갖춘 제철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전쟁 수행을 위해 철광 자원 개발이 필요한 실정이어서 삼화철광산 개발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1943년엔 제철 사업을 놓고 동양척식주식회사와 분쟁이 발생하면서 고레가와는 제철 회사를 설립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해방 이후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일본으로 돌아간 고레가와 긴조(是川銀藏)는 초등학교 학력으로 63세에 주식 투자로 1조 원을 벌어 ‘마지막 승부사’로 불리며 일본 주식 시장의 전설이 되었고 1983년 고액 납세자 명단에서 신고액 28억 9,900만 엔으로 전국 1위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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