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3이 된 기분
공부 중 공부 중 공부 중
고3 담임교사들이 학생들 못지않게 하는 공부가 있다. 바로 입시 공부이다. 매년 조금씩 바뀌는 대입 전형으로 인해 수년간의 고3 경력 교사조차 한 해만 담임을 쉬어도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만큼 한국에서 대학을 가려면 매년 바뀌는 정책과 대학별 입시 변화 사항을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입시의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쌓이더라도 방심할 수 없는데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공백을 매우려면 그 노력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고3 부장님과 담임교사를 대상으로 열리는 연수에 참여하기 위해 가천대로 향했다. 난생처음 방문한 가천대,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던 곳이 시절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옷을 입고 멋진 캠퍼스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젊음의 파릇함이 느껴져서 마음이 괜히 설렌다. 컨벤션센터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빼곡한 줄은 학생들을 위해 입시를 공부하기 위해 모인 교사들의 열기를 반영해 준다. 넓은 홀 하나를 가득 채운 열정 모드가 방학을 무색게 한다. 경기도 교육청 장학관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일정표에 따라 준비된 강사님들과 만난다. 처음부터 귓속으로 날아든 코멘트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저라면 올해 고3 부장 고사했을 겁니다. 입시 지도가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통합 수능, 의대 정원 확대, 무전공/자율 전공 도입 등 변수가 너무 많아요."
어느 해든 경제 성장률, 취업률, 부동산 경기 등을 놓고 "올해는 정말 기대가 됩니다!" 하며 핑크빛 전망을 내놓은 적은 거의 없다. "대입 전형의 안정화로 입시 지도 예측률이 높아져서 담임들의 태평성대가 기대됩니다."를 예상했던 바도 아니다. 입시 제도는 언제나 널을 타듯 변화무쌍했고, 그 물결에 이리저리 밀려다닐 수밖에 없는 부담은 학생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툭 던져주면 깔끔하게 골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여기저기 튀는 공으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다. 뭐, 이런 일은 하루이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적응을 해야지 한다.
단지 안타까운 지점은 고3의 특수성 때문에 교사의 역할이 교육자가 아닌 입시 기술자로 변모해 가는 현실을 마주한 것이다. 사교육은 발 빠르게 교육 환경의 틈새를 뚫고 적응해 나가며 학부모들의 지갑을 연다. 자료를 이리저리 가공하여 대학 합격 안정성을 판단해 주는 불법 입시 컨설팅이 1시간에 100만 원을 육박한다는 기사가 있다. 이를 집중 점검한다는 뉴스를 접하며 학교의 교육 서비스 제공은 당연한 것이지만 모든 자원을 투입하여 입시 분석에만 매달리는 사교육 업체들과도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아니, 근본적으로 입시 경쟁의 치열한 교육 생태계 자체에 마음이 아프다. 줄어드는, 그래서 더 귀한 학령기 우리 아이들을 언제까지 입시 지옥의 수렁에 가두어 두어야 할까?
이러한 교육 환경 속에서 교육청과 진로진학 지원단 교사들의 숨은 땀과 노력이 연수를 통해 전해졌다. 입시 기술자로서의 전락이 아니라 입시 전문가로서의 성장으로 관점을 바꿔볼 동기도 생겨난다. 오후 내내 연수장에서 쏟아내는 정보들을 머리에 쑤셔 넣기 위해 열심히 듣고, 필기하고 하다 보니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체력과 여건이 얼마만큼 버텨줄지 모르지만 어차피 고3의 배를 탔으니 담임교사도 고3 모드가 되어 함께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배움은 언제나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설렘이 있다. 고생과 설렘의 짬뽕 같은 만남 속에 둘의 비율은 매일 변동 곡선을 탈 것으로 예상되지만.
하루 종일 심심할 수 있는 아들을 친구집에 맡겨 놓고 왔기에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묵직한 머리를 이고 지고 오늘 배운 것이 휘발되지 않게 복습도 해야겠다. 고3 모드 '공부 중'의 여정은 이렇게 막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