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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Mar 17. 2024

요즘 고3들의 고민은?

시간을 초월하는 공통분모

 예비 성인기에 해당하는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안고 있다. 수천 년 간의 역사 속에서 만나는 각양각색의 인간상과 인간사가 여전히 현대에도 재현되는 것을 보면 우리네 삶은 별것인 하지만 별것 아 수도 있. 시대를 초월하 누구나가 겪는 경험 당연하게 여기며 과도하게 반응하는 에너지 소모를 차단하는 것이 지혜이다.


 요즘 고3의 고민은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의 경험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미 건너온 그 시기를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끙끙거릴 필요가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시간과 경험의 축적으로만 입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억지로 끌어다 입힐 수 없어 안타다.

 요즘 고3 아이들은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갈까? 오랫동안 보아온 학창 시절 아이들의 고민은 크게 세 가지로 수렴된다. 친구, 성적 및 진로, 가족 문제 그것이다.


 첫째, 친구와의 관계 문제다. 잘 지내는 친구와의 갈등으로 등을 돌리게 되면 또래 집단이 가장 중요한 이 시기의 아이들은 흔들린다. 학년과 반이 새로 바뀌며 겪어야 하는 변화된 환경에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다. 낯섦은 시작의 또 다른 이름이지만 유독 여학생들은 짝을 짓는 특유의  성향 때문에 단짝 친구가 없어서 심적 어려움을 겪는.


 급식 지도를 할 때면 보이지 않는 학생이 있다. 같이 밥을 먹을 친구가 없어서 굶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부하려면 절대 굶어서는 안 된다는 개인적인 지론 때문에 강력하게 끼니를 챙길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는 예민한 여학생의 상황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나 역시 혼밥은 20대 초반까지도 어려운 일이었.


"그럼, 선생님하고 밥 먹을까?"


긍정의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예상외로 예스!로 화답한다. 내가 불편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밥을 정말 먹고 싶었던 것인가? 학생과 마주하며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손까지 흔들며 함께 식사할 의지를 비춘다. 운명처럼 같은 테이블에서 씩씩하게 혼밥 중인 여학생 한 명 보인다.


"이리 와서 같이 먹자!"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 여학생을 점심 짝꿍으로 붙여주었다. 나란히 산책을 하는 둘의 뒷모습에 담임으로 미소가 절로 난다. 아름다운 그림이다. 이제 끼니를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으렴.


 둘째, 성적 및 진로의 문제다. 학생이라는 신분과 분리할 수 없는 숙명적 이슈, 대입 관련 고민은 아이들이 짊어진 공통 숙제다. 학업 성취가 높으면 높은 데로 낮으면 낮은 데로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부담을 지고 간다. 성적이 나쁘지 않은 데도 불안해서, 혹은 낮은 자신감에 속내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린다. 성적과 진로 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을 겪으며 사이가 틀어져 속상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고3이라는 긴장감 팽팽한 줄을 타 있어서 인지 상담 중에 아이들의 눈물을 그 어느 때 보다 더 많이 보 된. 대학을 가야 할 것 같지만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아이들, 계속 놀다가 3학년 때 공부를 시작해서 막막한 아이들 등 다양한 모습의 짐을 풀어놓지만 결국은 진로 문제다.


 작가를 희망하는 학생이 있다. 감성 말랑한 친구라 글 속에 얻은 깨달음을 나누어 주고 싶었다. 요즘 필사 중인 어린 왕자 속 명언을 건넸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


 우리는 우물을 찾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우물을 찾으려면 해야 될 일이 있다. 바로 사막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척박한 사막길을 오롯이 걸어가야 숨겨진 우물을 발견할 수 있고 샘물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고3이라는 메마른 길을 온전히 통과하는 것,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 동기 부여가 되었는지 "아!"를 남발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글 쓰는 사람의 몽글한 정서가 통했길 바라며 깨달은 것을 끝까지 품고 걸어갈 것을 다독였다.


 셋째, 가족 문제이다. 아이들의 정서적인 뿌리는 가정이다. 부모들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아 마음이 힘든 아이, 부모와의 관계가 틀어진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자녀 삶에 대한 관심도가 대입 직전에 갑자기 치솟다 보면 그간의 관계 공백이 메꿀 수 없는 수틀림으로 이어진다. 안전한 관계 다져지지 않은  부어 기대는 냉기를 더할 뿐 쓴 뿌리의 골 깊어진. 함께의 시간이  움큼 뚝 떼어져 나간 부모와 자식의 소원한 관계 속에 부드러운 영향력을 주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부모와 마주치기 싫어 집 밖에서 배회하다 밤늦게 들어가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부모로서 언제 가장 행복할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자녀의 사회적 경제적 성공이 다가 아닐 것 같다. 부모 자식 간에 친밀함과 돈독함 안에서만 통하는 매직이 힘을 받는 순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부모님이요!"를 대답하는 자녀를 둔다면 부모로 가장 성공적인 삶이고 잘 살아온 증거일 것이다. 어렵지만 꼭 갖고 싶은 꿈 된다. 방황하는 아이들의 주된 이슈 중 하나를 발견하며 가족애를 잘 다져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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