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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11. 2022

때론 별것이 아닌 일

도어락 열기


종종 마음속에 1%, 혹은 0.1% 아니 0.01%의 근심을 지니고 있을 때가 있다. 이 근심의 숫자를 생각하니 신경은 쓰이지만 어쩌면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이다. 이 정도의 근심은 종종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시원하게 보지 못했을 때, 또는 얼굴에 뾰루지가 낫을 때, 오늘 입고 나온 착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도 약간 느낄 수 있는 '신경 쓰임' 정도랄까?



가끔 이유 없이 화가 나거나 짜증을 낼 때가 있다. 어릴 적에는 그냥 내 마음껏 감정을 표현하고는 했지만 나이가 한 살 두 살 들어가면서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왜 기분이 갑자지 저조한 건지, 무슨 이유로 짜증이 나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엔 마음을 다스리고자 그러한 이유를 다이어리에 적어서 살펴보곤 한다. 많이 발전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일이 가끔 갑자기 커져서 마음에 훅 들어오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이 오면 그때부터 그 작고 사소하고 하찮은 일은 내 마음의 50%의 근심으로 가득 찬다.



최근에 가장 마음에 쓰이던 것은 지난 12월부터 열리지 않는 창고 문이다. 창고문은 디지털 도어락으로 되어있다. 현관문은 버튼식인데 창고문은 터치 식이다. 창고는 외부에 있어서 영향을 받기 쉬운데 차라리 버튼식으로 되어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하필 터치식으로 되어 있어서 예감이 좋지 않았다. 처음에 집을 보러 오던 날에도 창고 도어록이 부실하게 생겨서 고장 난 줄 알았고 애초에 도어락 교체를 전제조건으로 넣었다. 그런데 막상 이사와 보니 전혀 교체되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잘 작동하길래 고장이 나지 않았으니 바꾸지 않았겠지 하면서 그냥 컴프레인 걸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그런데 결국 그게 문제가 될 줄이야.




문제의 도어락





그 후 기억을 더듬어보면 11월엔 종종 문이 열렸다. 재밌었던 것은(?) 그때는 남편이 터치 도어락 버튼을 누르면 열리지 않았고, 내가 누르면 열려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남편이 몇 번을 실패하고 내가 한 번에 문을 열었던 그날이 생각난다. 문에서 소리가 났다. '무슨 소리지?' 하고 의아했다. 정확히 그 소리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배터리가 없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무시했다.



아무튼 그 후로 문에서 나는 소리를 세 번 정도 들었으나 무시한 것이 잘못이었다. 결국 창고 문은 어느 날 열리지 않았다. 터치 버튼은 눌린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는다. 12월부터 그랬으니 1월, 2월이 지나도록 문을 열리지 않았다. 문에서 나던 소리를 철저하게 무시한 나의 잘못이었다. 사실 겨울이라서 고장 났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3월이 되었다. 날씨가 따듯해졌는데도 창고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3월엔 저 창고문을 반드시 열고 싶은데 생각했지만 갑자기 커져버린 근심과 다르게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며칠 동안을 근심이 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갔다. 근심이는 내 안에서 점점 더 커져갔다.







왜 창고 문을 열어야 했냐면... 그곳엔 내 냉장고가 있었다. 산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제주로 내려와 창고에 갇혀버린 '신상 냉장고'가 그곳에 있었다. 그 냉장고는 그 창고에서 작동 중이었다. 그리고 저장음식처럼 오랫동안 두고 먹는 그런 몇 가지 음식 재료를 넣어놨다. 특히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음식은 '김치'였다.



우리 집 김치는 나랑 아이만 먹는다. 남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식재료... 그러나 나에겐 너무도 중요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그 재료였다. '김치' 나는 그러니까 3달 동안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한 달 전 내가 먹던 김치는 다 떨어져 버렸다. 며칠은 그래도 버텼는데 김치가 없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치를 구매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많이 들어있는 것은 사지도 않고 300g인가 500g인가 김치를 한 봉지를 샀는데 비쌌다. 외국에 살 때는 당연히 사 먹던 김치였지만 한국에 와서는 엄마가 주시는 김치를 받아먹기만 해서 사 먹을 일이 없었는데 김치가 은근히 비쌌다. 그렇게 비싼 김치로는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등등 요리를 해먹을 수도 없었다. 나는 상심했다.



그래도 김치는 먹어야 했다. 어제는 다행히 행사기간이라 500g + 500g 두 개가 세트로 행사를 하길래 사 왔다. 사실 사 먹는 김치는 갓 만들어서 그런지 감칠맛도 나고 밥이랑 먹기 딱 좋긴 하다. 그리고 김치가 너무 비싸니까 행사할 때 더 사놓을까? 잠시 고민했다. 김치를 먹으니 정말 행복했지만 김치를 넉넉히 먹을 수가 없었다. 아, 이제 그만 김치를 마음껏 먹고 싶다.



갑자기 김치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지만 그 창고를 열어야 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창고에는 냉장고 말고도 아이의 자전거와 농구 골대가 있었다. 3월이 되며 서서히 제주 날씨가 따뜻해지자 아이는 자전거를 꺼내서 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이는 우리가 창고로 가서 문을 열려고 시도할 때마다 따라와서 자전거를 꺼내 달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때마다 "창고 문이 열리면 꼭 꺼내줄께" 라고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창고로 가서 나는 또 문을 열려고 했다. 배터리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왜 열리지 않는 걸까? 사실 그 몇 달 동안 AS 기사분을 불러서 왜 창고를 열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추웠다. 추워서 열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90%였고, 고장 났을 확률은 10%였다. 그리고 김치도 있었다. 딱히 창고문을 열어야 할 긴박한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날이 따뜻해지면, 봄이 오면 창고 문을 열어야지 생각했던 것이다.



갑자기 생각났다. 창고에는 바로 열어진 창문이 하나 있었다. 옆으로 여닫는 창문이 아니라 위로 들어 올려서 살짝만 공간이 생기는 창문인데, 나는 원래 '환기'를 중요하게 생각해, 그 창문을 조금 열어놓았었다. 그 창고는 이미 여름에 들이닥친 비로 썩은 부분이 있어서 들어갈 때 여러 오묘한 냄새가 나있어서 환기는 자주 해야 하는 곳이었다. 아무튼 오늘따라 그 창문 근처로 가서 뭐라도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창고에 열려진 창문 모습





그동안 그 창문은 우리 집 연못(집에 재밌게도 연못이 있다)을 거쳐서, 돌담으로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부분이라 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따뜻해서 '한번 올라 가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창문을 활짝 열어보니 양쪽 옆에 나사가 보였다. 처음 시도는 그 나사를 모두 분해해서 창문을 뜯어서 들어가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집으로 들어가 전동드라이버를 가져왔다. 그리고 다시 연못을 건너서 창문으로 가서 드라이버로 나사를 돌려봤다. 전혀 먹히지 않았다. 드라이버도 전동드라이버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창고의 창문 나사가 이미 부식이 되어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창문을 뜯어야 하는 첫 번째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창문 사이로 내 머리가 들어간다면 난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애초에 아이를 그 안으로 넣어서 문을 열고 싶었는데 , 아이가 아직 우리의 말에 따라 문을 열 줄은 모르는 터라 아이를 넣었다가 위험한 사항에 처할까 봐 시도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내가 머리를 넣어봐야겠다는 무모한 생각을 했다. '한번 해보자!' 그리고 창문 사이로 머리를 넣었다. 어? 들어가네... 이러다 정말 내 몸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씩 손을 짚고 올라갔다. 아뿔싸! 들어가다 보니 배, 엉덩이가 낀다. 겨울 내내 비축해둔 살이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굴하지 않고, 배에 힘을 주고 조금씩 조금씩 시도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몸이 다 들어갔다. 다행히도 몸이 창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질뻔했는데, 그 옆에 책상이 있어서 그것을 끌어당겨서 책상 위로 올라가서 착지했다. 몇 달 근심을 갖은것치곤 생각보다 수월하게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드디어! 창고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큰 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참고로 우리 동네는 아주아주 조용한 동네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마 최근에 들었던 소리 중에 내 목소리가 제일 컷을 것이다. 2층에 있던 남편은 나에게 큰일이 일어난 줄 알고 뛰어 내려왔다. "왜! 왜 무슨 일이야!" "내가 창고 문을 열었어!" 우리는 둘이 얼싸안고 기뻐했다. 남편에게도 그 창고는 몇 달간 마음속의 근심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왜 진작 고치지 않았어?"라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우린 그저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추운 겨울 사람을 불러서 창고문을 열기에는 우리는 정말 정말 추워서 힘이 없었다. 그런데 3달 동안 묘하게 신경 쓰이던 창고를 단 몇 분 만에 들어가고 보니, 별 것이 없었다. 사실 그렇게 맘 쓰고 근심하던 그 일은 이렇게 해결하고 보니 결국 별것도 아닌 일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아이는 드디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작고 작은 근심들이 살고 있다. 어느 순간 그 근심은 또 '창고 근심'처럼 커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결국 '어떻게든 해결하고' 보면 별 것 아닌 아주 사소한 걱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깨달음' 결국 내가 스스로 몸소 겪어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다.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내 안에 있는 근심의 크기를 더 줄여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서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지는 기적 같은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아무튼 그 정도로 작았던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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