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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04. 2022

입은 하나, 귀는 둘이다.


어른이 되어 살아갈수록,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것은 "말은 적게 할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말을 아끼며 살았나. 어쩌면 그것이 답답해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은데,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도 너무 많아서...



본투비 수다쟁이였던 나는 결혼을 하고 남편의 지인들을 만나게 되며, 행동도 말도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신혼생활을 외국에서 해서 그런 탓인지 혹은 그 집단이 작아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던 눈에 띄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무튼 처음 겪게 되는 울타리 안에서의 생활은 답답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로 인해 생겨나는 관계가 생겼는데 그때 다시 한번 더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우리 아이에게 피해를 줄까 봐, 남편에게 흉이 될까 봐 또는 이 작은 동네에서 소문이 날까 봐 나는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렇게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가족 외에 사람들에게 말을 줄여갔다.









서울과 제주의 거리는 718km이다. 나는 요즘 제주에 살면서 서울에서 생겨나는 일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 이전 동네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들을 듣고 있자니 참 재밌기도 하다. 



엄마들 사이에서의 말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아이가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아이 친구 엄마들을 알게 되며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말'이었다. 동네에서는 내가 하는 말이 모든 곳으로 돌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말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 많아서 내내 쉬쉬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입을 꼭 닫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가끔 터지기도 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집에 와서 곱씹어보며 후회하곤 했다. 



나에게는 최근까지 살던 곳에서 아이를 통해 마음을 나눈 두 명의 친구 엄마가 있다. 그중 A엄마에게는 요즘 주기적으로 전화가 온다. 내가 궁금하지만 몰라도 되는 그런 종유의 모든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제주에서는 만나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을 나눌 곳이 없긴 하니까 전화가 오면 일단 반갑다. 물론 그 이야기들이 재밌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마음을 다스리며 살고 있는데,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듣고 동요하는 나의 모습을 볼 때면 여전히 나는 미약한 사람에 불과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B엄마는 주기적으로 제주에 여행을 온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1박 2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면 정말 다양한 얘기를 하게 된다. A엄마와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을 더 깊게 듣는다. 간혹 A엄마가 얘기해주었던 말의 진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역시 알고 싶지 않았던 얘기를 알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내 속에 있던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B엄마가 돌아간 후에는 내가 실수한 것은 없나 곰곰이 곱씹어보며 며칠을 찜찜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보통 그들의 이야기를 재밌고 흥미롭게 듣는다. 때론 들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지거나 부담스러워지기도 하다. 물론 몰랐으면 좋았을 것 같은 이야기도 있다. 어차피 그 속에 핵심은 없다. 그런데 그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 내가 말한 이야기도 서울에 전달되고 있겠구나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리 말을 적게 한들, 나도 하는 이야기가 있다 보니 종종 그들이 그 말을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을 삼가는 것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는 많았는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나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에 있었다. 제주에 온 지 4개월, 홀로 살아간 지 몇 개월이 지나서야 그때를 되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그 이유를 알고 나니 뭔가 마음이 후련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그들과 온 마음을 다해 진심을 나누고 싶은데, 아직은 자신이 없다. 정말 좋은데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고, 말 또한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아니면 마음을 나누는 일이 더 어려운 것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법정스님의 '내 마음을 잘 다스려 마음의 문 인 입을 잘 다스려야 한다'와 '입을 잘 다스림으로써 자연 마음이 다스려진다'는 말이 있다. 어쨌든 이곳에서 입과 마음을 잘 다스려야겠다. 그래서 다시 돌아갔을 때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하니라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그것이 어쩌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일 테니까. 






사진출처 : https://pin.it/3ZgjH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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