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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16. 2022

어젯밤 꿈



어젯밤 꿈엔 얼굴이 까무잡잡했던 친구가 등장했다.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긴가민가했지만 눈을 떠서 이름을 떠올렸을 때, 이제는 오래되어서 기억이 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딱 하고 생각났다. '김진원' 과연 이 이름이 맞을까 자신이 없기도 하지만, 아마도 맞을 것이다. 정확한 이름은 아마도 나중에 친정에 가서 졸업사진을 찾아보면 될 것이다. 



꿈에서 깨어 이름을 생각해 내고는, 그다음 우리가 언제 알던 친구였나 생각했다. 이게 조금 어려웠다. 그렇지만 아마 나는 고등학교를 여고를 나왔으니 중학생일 때일 것이라 추측했다. 왜 이 친구가 꿈에 나왔을까? 좋아하던 친구도 아니었고 까무잡잡했던 피부를 가졌고, 말수가 적었고, 그러다 가끔 대화를 나누게 될 때면 과묵하던 그 답지 않게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던 그 아이.  왜 갑자기 이렇게나 세월이 많이  흘러 내 꿈에 나왔는지 모르겠다. 어젯밤 보고 잤던 드라마에 나오던 남자와 닮았었나 싶기도 하고... 아! 송승헌을 닮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암튼 그는 나를 기억이나 할까? 



하긴 엊그제 밤 꿈엔 고모가 나왔다. 할머니 장례식 때 소리 내어 격하게 우시던 고모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그럴까, 아니면 이번에 강원도에서 났던 산불이 고모 집 근처에도 퍼져서 걱정이 돼서 그랬던 걸까. 하긴 지난번 꿈엔 고모들 5분 모두가 내 꿈에 총출동하기도 했다. 










종종 이상한 꿈을 꾼다. 원래의 나는 꿈을 이렇게나 많이 꾸지 않을 때도 있는데,  아이를 낳자마자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꿈을 꾸었다. 신생아 시절, 몇 시간마다 일어나며 수유하던 때,  내 인생을 총망라해서 가장 많은 꿈을 꾸었던 시기이다. 그 이후 아이가 돌 즈음 자리 잡게 되었던 서울의 어느 집에서는 다행히 그때보다는 꿈을 덜 꾸게 되었다. 그때는 오히려 피곤하고 힘들어 꿈을 꿀 체력조차 없었다. 



그러다 또 이사를 갔다. 서울에서의 두 번째 집이었는데, 이사를 하고 나서 바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머리 맡을 창가로 두고 자 볼 때도 있었고, 화장실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잘 때도, 침대가 아니라 바닥에서 잘 때도 있었다. 별짓을 다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꿈을 꿨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혹시 여기 살던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남아있어 그 영혼이 내 꿈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니겠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다. 

 






아마도 내가 가진 다양한 마음이 밤마다 꾸는 꿈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종종 꿈은 내 마음과 연관된 것이어서 실제로 어디에서 자던지, 어느 곳에 머리를 두던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때로는 내 생각과 전혀 관계없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이런 꿈을 개꿈이라고도 부른다지? 나도 내 꿈을 모르겠다.



아이가 어릴 때는 자주 친정에 갔다.  내가 예전부터 사용했던 이불 , 패드, 베개를 늘 같은 것으로 올 때마다 사용했다. 늘 바로 옆에 딱 붙어 자던 아이도, 친정에서는 다른 이불, 패드, 베개를 주고 내 옆으로 따로 잠드는 공간을 마련해줬다. (친정엔 침대가 없다) 유일하게 그곳에서는 꿈을 꾸지 않았다. 최근 6년간 내가 제일 잘 수 있던 곳은, 꿈을 꾸지 않을 수 있던 곳인 그곳뿐이었다. 


 







제주도에 이사 온 첫날, 나는 싱글 침대에서 엄마와 함께 잠이 들었다. 베개가 하나뿐이라 엄마에게 주고 나는 그냥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도 내 것이 아니고, 이불조차 없어서 간신히 여행가방에 구겨가지고 온 이불 한 채로 엄마와 나눠 덮었다. 나는 오늘만큼은 자면서 제발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이사 온 첫날 나는 밥솥을 먼저 집안에 놓거나 하는 그런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고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인데도 그날 꿈을 꾸었는지 아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단지 친구들과 MT를 가서 쭈그리고 다 함께 어울려 잤던 그런 기분으로 찌뿌둥하게 일어났었다. 



그다음 날 오후, 이삿짐이 들어왔다. 우리 집에는 1층, 2층에 각각 방이 한 개씩 있는데 1층을 잠자는 방으로 정했다.  그곳엔 원래 기존에 있던 싱글 침대가 있었고, 거기에 우리가 가져온 킹사이즈 침대를 붙여서 꽉 찬 침대방을 완성했다. 다시 우리 침대와 사용하던 이불에서 잠을 잤다. 이사 전 잠시 가졌던 새로운 생활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다시 이런 아늑한 공간에서 잠을 잘 수 있다니 기쁘다는 생각을 했다. '변한 것 없이 똑같은데 집만 바뀌었네.' 그날 나는 깊은 잠에 잠들 수 있었다. 








이 글의 마무리가 그 후로는 영원히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라고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꿈을 꾼다. 어쩔 수 없다. 거의 매일 꿈을 꾸며 살아가는 인간이 돼버렸다. 다행히도 잠잘 때만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꿈도 꾸며 산다.  나는 두 가지 꿈을 꾼다. 



마침 이 글을 쓰는데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잃어버린 것들은 그냥 다 잊기로 했네' 

매일 꿈을 꾸는 대신 내 마음에 있는 갈 곳을 잃어버린 것들을 다 잊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꿈에 나온 것들이라도 제발 잃어버렸으면,  빨리 잊혀져 버렸으면 그래서 내 마음의 늘 평온하다면 참 좋겠다. 그러면 매일 밤 꿈을 꿔도 덜 억울할 텐데.










메인사진 : https://www.pinterest.co.kr/pin/8866530507116086/

본문 사진 : https://www.pinterest.co.kr/pin/4862487096660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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