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ir Apr 15. 2022

고양이의 보은


아기 고양이가 떠났다. 내가 예뻐하던 그 고양이가 떠난 지 한 달 정도가 되었다. 몇 달이나 함께 지냈으면서 제대로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귀염둥이'라고 불렀다.


오늘은 그 고양이와 똑 닮은 B고양이가 지나갔다. 우리 가족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고양이를 보여 귀염둥이 A고양이인 줄 알고 창밖을 넋 놓고 쳐다봤다. 그런데 아니었다. 조금 있다가 검정고양이 C도 지나갔다. 오늘따라 고양이 세 마리 중에 두 마리나 왔다 갔는데 유독 A 녀석만 오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잘 지내고는 있는 걸까?








귀염둥이 A 고양이를 만난 건 11월 중순이었다. 그때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 마리가 함께였다. 아기 고양이 세 마리는 정말 작고 귀여웠다. 아기 고양이들이 나무데크에서 왔다 갔다 하자 나는 서둘러 집에 있는 고양이 간식을 내어주었다. 사실 내가 예뻐하던 그 아기 고양이 A가 세 마리 중에 하나였던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고양이가 떠나고 나서야 고양이 사진을 뒤적거리다 알게 된 것이다.





11월의 아기 고양이 세 마리와 엄마 고양이





아기 고양이 세 마리는 가을과 겨울 그 사이 우리 집을 종종 놀러 왔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엄마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금세 진짜 추운 겨울이 되었고 아기 고양이들 세 마리는 우리 집 나무 데크 아래에 자체적으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 집에 몰래 들어와 우리와 함께 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냥 고양이 세 마리가 우리 집에 참 자주 놀러 온다고 생각했다. 다른 고양이들도 자주 오고 가던 집이었으니까... 세 마리 고양이도 우리 집을 오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이가 도망가는 고양이들을 보며(고양이는 우리가 움직이기만 해도 도망갔다) "엄마! 고양이가 저기 나무데크 아래로  들어가 숨었어요"라고 말해줘서 알았다. 나는 우리 집 나무데크 사이로 그렇게 큰 구멍이 나있는지도 몰랐다.



그 이후로 고양이 세 마리는 그곳에 살면서 자유자재로 우리 집과 밖을 넘나들었다. 그럼 아기 고양이는 10월, 초가을 즈음 태어난 걸까? 11월에도 아기 고양이였고 1,2월에도 아기 고양이였다. 3월이 돼서야 '오~ 이제 조금 컸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세 마리의 고양이 중에 한 마리는 검은색(B), 두 마리는 흰색과 검정으로 이루어진 얼룩 고양이(A, B)다. 그 A, B 두 마리의 고양이는 뒷모습 거의 99% 비슷했다. 그런데 앞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그 차이는 검은 점의 자리였는데, 한 마리(A)는 코에 한 마리(B)는 코 옆에 점이 위치하고 있었다. 둘은 거의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 커다란 점 하나로 정말 다르게 생겼다. 처음에 그 둘은 크기도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한 마리(A)는 작은 몸집 그대로고, 밖으로 더 많이 오고 가던 그 고양이(B)는 몸집이 점점 커졌다. 주로 B, C 고양이는 밖을 돌아다녔고 내가 집에 있을 때, 그리고 저녁엔 늘 A 고양이와 함께였다.  



 





내가 집에 있는 날이면, A 고양이는 어슬렁어슬렁 대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 아침 일찍부터 우리 집 창가로 와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오늘 어디 가지 않고 집에 있는 줄 어떻게 알고 놀러 온 것이 정말 신기했다. 그것이 예뻐서 고양이에게 영양 가득한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고양이는 나를 쳐다보다(밥 달라고) 음식을 주면 그것을 먹고 또 나를 바라보다 그러다 데크에서 식빵도 굽고, 기지개도 피고, 누워서 햇빛을 쬐기도 하곤 했다. 햇살이 따사로운 날, 나무 데크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휴식을 취하는 고양이를 볼 때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우린 창을 사이에 두고 아이컨택을 하며 서로를 한참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 눈을 꿈벅거리며 잠들어 버리는 고양이 모습을 볼 때면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다 작은 인기척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는 모습도 귀여웠다. 때론 나는 그러한 고양이의 모습을 다이어리에 그려 놓기도 했다. 창가 밖의 고양이와 함께 하는 그 순간은 마치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 느낌이 들었다. 그 평화로운 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내가 그린  A 고양이





그러다가도 음식을 주려고 가까이 가면 뒤로 뒤로 물러섰다. 특히 창문을 열고 나가 고양이 집 가까이에 있는 창고로 가야 할 때면 고양이는 저 멀리 도망쳐버렸다. 아주아주 겁이 많은 아기 고양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도 언젠간 쓰다듬을 수 있게 되고, 고양이 얼굴 앞에 음식을 가져다줘도 무서워하지 않을 정도로, 친해질 수 있겠지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도 훨씬 전에 떠나버렸다.



아마 몇 달을 우리 옆에서 지냈더라면 나는 그 고양이를 끝내 집안으로 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고양이를 20년 동안 키웠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고양이 덕분에 동생을 낳아달라는 소리도,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야말로 고양이 대신 둘째를 낳을 것을, 괜히 제주도에 가서 살다가 혹만 얹어서 돌아왔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자꾸만 생각난다. B고양이도 아니고 C고양이도 아니고 나를 유난히도 따르던 A 고양이가 보고 싶다.






귀염둥이 A 고양이, 널 어떻게 잊어ㅠㅠ










이상했다. 며칠 전부터 A 고양이가 보이질 않았다. 실은 그 며칠 전부터 A 고양이가 집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무엇을 찾는듯한, 구하는 듯한' 모습을  목격하고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나질 않는다. '이상하다. 요즘 고양이가 왜 안 보이지?'라고 생각한 며칠 후...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창가 앞 나무데크에 거의 죽어가는, 입을 뻐금거리는 새가 누워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창문을 닫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죽으려고 하는 참새를 보았더니 심장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분명 잘못 봤을 거야) 아이를 깨우고 옷을 입히고, 등원 준비를 했다.



등원 준비를 마친 후, 설마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어... 하며 창문을 열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새가 죽어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오빠~~~~" 소리를 지르가 남편이 뛰어왔다. "왜~무슨 일이야?" "오빠.. 오빠 새가 죽었어" 남편도 창문 밖을 보고 깜짝 놀랐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도 못하고 등원 시간이 가까워서 우린 서둘러 집을 나왔다. 우리가 밖에 나갔다 온 몇 시간 동안 새가 사라지길 바랬다. 분명 큰 고양이가 데려갈 거야... 생각했다.



몇 시간 후 다시 아이를 하원 시켜 집에 도착했다. 새는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남편덜덜 떨면서 새를 정리했다.  갑자기 나무 데크 위에 죽은 새라니... 너무 소름 끼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갑자기 웬 새가...?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종종 고양이가 주인에게 '죽은 쥐'를 가져다준다고 했던 그런 말이 떠올라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러다 길고양이가  감사의 표시로 쥐, 새를 가져다주고는 한다는 글을 찾게 되었다. 그 글에 의하면 그 새는 고양이의 보은이었다.



그랬구나. 당연하게도 A 고양이가 떠올랐다. 새를 주려고 우리 집에 다녀갔을 것만 같은 A가 떠올랐다. 몇 달 동안 음식을 챙겨주긴 했지만 입이 고급이었던 고양이라 또 아무거나 먹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부족하게 챙겨준 것이 떠올라 미안했다. 다시 돌아오면 더 좋은 음식, 더 맛있는 음식을 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이제 우리 곁에 없다. 매일 함께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한 달이 넘어도 다시 찾아오지 않는 고양이가 야속하다. 그러나 보고 싶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생각난다. 가끔 창가에 고양이가 지나간 것 같아서 뛰어가 확인할 때도 있다. 종종 도서관에서 고양이를 그린 책을 빌려오기도 하는데 그런 날이면 고양이 더 많이 생각난다. '귀염둥이 A고양이' 부디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에 얼굴 한 번만 보여줬으면 좋겠다. 야 인마! 작별 인사는 제대로 하고 가야지!









메인사진 :  https://pin.it/2 vRktbC

작가의 이전글 어젯밤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