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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13. 2022

시부모님과 거리두기

어머님 생신날


오늘은 어머님 생신날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번 주말에 제주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생신파티를 열었어야 하는데 현재 코로나 상황이 너무 심각해져서 오시지 않으시고 서울에 계시기로 했다.



제주 집으로 시부모님이 오시는 것과 안 오시는 것으로 며칠 동안 나의 마음 상태가 달라진다. 일반 손님이 오시는 것도 부담인 제주생활인데 (내가 워낙 예민하고, 신경 쓰는 사람이라) 시부모님이 오신다니 음식부터 잠자리, 가야 할 여행지까지 모두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미 내가 제주에 사는 4달 동안 아버님께서는 2번, 어머님은 1번 다녀가셨다. 물론 앞으로 몇 번 더 놀러 오시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3월 코로나가 심각해져서 못 오신다길래 내심 좋았다. 이런 마음을 갖는 내가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나를 불효자라고 여겨도 할 수 없다. 내가 이렇게 돼버린 이유를 말하면 나를 조금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지난 코로나 2년 동안 시부모님은 매주 1회씩 우리 집에 오셨다. 남들은 부모님들도 거의 못 만나고 우리 가족끼리만 지낸다고 하던데.. 우리 시부모님은 다른 곳으로 마음껏 외출하지 못하신다는 이유로 아들 집으로 오셨다. 물론 그 이유도 있지만 하나뿐인 손주가 너무 보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하셨다. 그래서 매주 꼬박꼬박 만났다. 주중엔 우리 집에서 주말엔 시부모님 집에서 뵀다. 그러니까 지난 2년 동안 매주 2회씩 시부모님을 만났다. 그런데 매주 시부모님을 맞이 하는 것은 평소에 절대 집으로 친구나 손님을 부르지 않는 나에겐 엄청난 일이었다. 식사를 준비해해놓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청소를 깨끗이 해놓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매주, 오시기 전날, 오시기 직전까지 나의 스트레스 수치는 최고조에 달했다.



물론 그분들이 우리 집에 오셔서 냉장고를 열어보지는 않으셔도, 매번 볼 때마다 하는 똑같은 잔소리와 내가 어른들의 저녁 상을 차리지 않아도, 매번 내뱉곤 하시는 아이에 대한 걱정과 염려, 당부에 대한 말들을 매주 2회씩, 2년동안 반복해서 듣고 있자니 사람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우리의 관계도 아이 낳기 전엔 아주 평화로웠다. 세상에 둘도 없는 시부모님과 며느리 사이였다. 그 이유인즉슨 그때 아주 멀리 떨어져 살았다. 미국과 한국 그 거리만큼 우리의 거리도 아주 철저하게 지켜졌고 그래서 아주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며, 한국에 들어와 가까이 살게 되면서 시작된 잔소리는 나와 시부모님과의 관계를 몹시 힘들게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만 달라진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시부모님이다. 나만 호의적이고 순종적이던 며느리에서 모든 것이 부정적이고, 반항적인 며느리로 변했으니까.  













사실 제주에 와서 좋은 것은 그분들과 너무 멀리도 너무 가까이 있지도 않아서다. 해외에 있는 것과 다르게 제주도는 하나뿐인 아들과 손주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니까. 그러나 나에게는 시부모님과의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라고 왜 노력해보지 않았겠느냐...)



오늘은 어머님 생신이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생신 때마다 선물로 드리던 '사진첩' 도 만들지 않았다. 결혼한 이후로 9년 동안 시부모님 생신마다 사진첩을 만들어서 드렸었다. 처음 시작이 '학생 부부'로 시작했던 우리라 값비싼 선물보다 노력과 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매년 사진첩을 두 분 생신 때마다 만들어서 드렸다. 그런데 고작 1년에 두 번 만드는 사진첩도 어느 순간 너무 하기 싫어졌다. 마침 이번에 남편이 먼저 '이번엔 부모님과 같이 지낸 시간이 적어서 함께 찍은 사진도 별로 없으니까 사진첩 만들지 마"라고 말하기에 용기를 얻었다. 대신 올해 선물은 제주에 와서 아이가 직접 그린 그림, 만들기 작품 등등 그리고 아이가 쓴 편지와 우리 부부가 쓴 편지를 모아 상자에 넣어 보내드렸다.



생신 당일,  어머니께 축하전화를 드렸다. 모든 축하가 끝난 후 어머님께서는  "어멈아, 정말 고맙다. 아이가 만든 것을 이렇게 잘 모아서 보내줄 생각을 하다니 너는 정말 센스 있다. 정말 감동이다. 너무 고맙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왠지 눈물이 났다. 죄송스러웠다. '그래, 나에게 많은 것을 바라신 게 아니었는데 나만 또 나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내가 부정적인 마음을 먹을 때마다, 그분들에 대한 미움이 생길 때마다, 따뜻하게 말씀해주시는 한 마디에 나는 후회했고 자책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그때뿐,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받는 스트레스로 불편함, 미움, 원망 등이 다시 가슴속에 들어와 자리 잡았다. 이 상황은 지난 몇 년 동안 도돌이표처럼 늘 반복되고 있다.








매번 새롭게 마음을 먹어도 여전히 어른들을 만나는 것은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더 마음을 덜어놓고자 한다. 매번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이 감정은 나를 더 옭아매고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도 지금은 이렇게 멀리서 지내고 있으니, 이제라도 '잘해드려야지' '효도해야지' 하는 다짐이나 노력보다 그냥 나의 불편한 마음을 조금씩 비워내며, 앞으로의 적당한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오래도록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고 싶다. 이 정도가 나의 최선이 아닐까?









메인 사진 : https://www.pinterest.co.kr/pin/57660155855163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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