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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22. 2022

매일 돈 이야기만 하는 아내가  싫다고 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음식을 골고루 먹이고, 잠을 재우는 것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 조금씩 커가면서 해야 할 것들이 하나씩 늘고 있다. 진작에 한글은 깨쳤다. 한국말이야 너무 잘하고, 이제 동화책을 읽는 것도 점점 수월해지고 쓰는 것도 제법 한다. 이 정도 되면 부모라면 당연히 다음으로 영어를 가르쳐주고 싶어 진다.



그래서 영어 학원을 방문했다. 영어학원 방과 후 학원비가 33만 원이라고 했다. 차량비까지 37만 원이 든다. 비용도 비용인데 문제는 우리 집까지는 차량이 갈 수 없다고 했다(제주에 와서도 엄마들이 도심에 사는 이유다). 매일 2시간을 위해서 30분을 라이드 해야 한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을 했다(오히려 원장님이 되려 말리셨다). 결국 집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로 했다.



원래 나의 직업은 유아 영어 선생님이다. 이 분야의 대학원을 졸업했고 당연히 외국에서 따온 테솔자격증까지 보유 중이다. 우리 아이에게 못 가르칠 이유는 없지만 내가 반드시 가르쳐야지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학원으로 보내는 것이 불편하므로 당분간만 내가 해보기로 했다. 아이는 내 말을 너무 잘 듣는 편이라, 같이 영어 수업하는 것쯤은 전혀가 없었다. 모든 것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내가 요즘 최소 40~50만 원은 아끼고 있어! 아이 방과 후 학원 비용, 거기에 1:1 과외로 매일 1시간씩, 그리고 차량비까지 생각하면 최소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고 남편을 힐끗 보니 별 반응이 없었다.








요즘 제주를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탐이 나는 예쁜 집들이 참 많았다. 집뿐만 아니라 위치가 좋은 건물을 보면 사서 리모델링해서 카페 하면 잘되겠다 싶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사업 이야기를 했다. "뭐하면 돈 많이 벌 텐데, 이렇게 하면 돈 버는 것은 시간문제일 텐데" 하고 말이다. 사실 별생각 없이 말할 때가 많았다. 아마도 남편은 이런 내 얘기에 조금씩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다.



제주에 와서는 나도 모르게 점점 그런 얘기를 많이 했나 보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돈 얘기를 해? 그만 좀 해"  당황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에 맞는 대답이 생각났다.  "몰라서 물어? 그동안 말 안 하고 참은 거지. 돈이 있으면 돈 얘기를 하겠냐! 돈이 없으니까 자꾸 돈 얘기를 하지!" 하지만 이 말은 내뱉지 못했고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결혼한 그동안은 꽤 잘 참았다. 남편이 오랫동안 학생이었으니 돈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둘만 지금처럼 사랑하고 서로 위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가 어릴 때는 그렇게 많은 돈이 들 일이 없었으니까 아껴 쓰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결혼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아이가 조금씩 커갈수록 나는 점점 더 돈 만 밝히는 아줌마가 되어간다.



돈이 부족하다. 자주 부족하다고 느낀다. 주택은 너무너무 추우니 겨울 내내 보일러도 빵빵 틀고 싶고, 제주에 예쁜 집 하나 지어 살고 싶고, 자꾸만 말썽 부리는 차도 하나 사고 싶고, 갑자기 차가 없어진 아버지에게 새 차 하나 사드리고 싶고, 또 내가 좋아하는 가방도 자주 사고 싶고, 외식도 마음껏 하고 싶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매일 돈돈돈 얘기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다. 정말 싫다.











봄꽃을 닮은 젊은이들은 자기가 젊고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나도 젊은 날에는 몰랐다. 그걸 안다면 젊음이 아니지.
자신이 예쁘고 빛났었다는 것을 알 때쯤 이미 젊음은 떠나고 곁에 없다.



                                                                                          - 양희은, 22p, 그러라 그래




양희은 씨의 책을 보다가 마음에 와닿은 글이다. 젊음을 돈으로 바꿔서 읽어 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내가 돈이 정말 한 푼도 없어보아야 돈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겠구나 싶었다. 결국 이 또한 나의 배부른 불평이었던 것이다.



오늘의 나는 돈은 적게 있지만 젊고 예쁘다. 내가 돈돈돈 거린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돈이 없다고 남편이랑 싸워봤자 우리의 평화로운 결혼 생활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사람은 결국 나다.



어쩌면 오늘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고민하지 않는 것으로 돈은 충분할지도 모른다. 돈으로 얻는 행복보다 오늘 저녁으로 먹을 맛있는 카레를 만들고, 우리 가족 모두가 식탁에 모여 앉아 맛있게 먹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삶인 것을 깨닫고 싶다. 그것을 위하여 나는 끊임없이 성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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