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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Apr 24. 2022

누구도 강요한 적 없지만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아니 꽤나 자주 이런 생각이 든다. '나 같은 게 어쩌자고 애를 낳아서는 아이만 불쌍하지 ' '나 같은 건 혼자 살았어야지 어쩌자고 결혼해서 남편을 힘들게 할까'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겪어보니 육아와 살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과연 육아와 살림에 적성이라는 게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살림을 매우 훌륭하게 잘하는 엄마들이 있기는 하니까. 늘 집은 새집처럼 깨끗하고, 그릇에 물기 하나 없이 차곡차곡 정리해놓은 그런 살림꾼들. 사실 '애는 낳으면 알아서 큰다'는 사람을 제일 한심히 여겼는데 아마 내가 제일 그런 생각으로 아이를 낳은 것 같다. 아이 한 명 키우며 혼자 힘든 척은 다 하고 있다. 차라리 애가 둘이라도 아니 셋이나 되었다면 내가 조금 힘들어도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차라리 혼자 살았으면 아무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다. 누구도 나를 종용한 적은 없다. 나의 자발적인 선택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매일 나에게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런데 '하기 싫다'. 여러번 말했지만 하루 삼시세끼 밥 차리는 것은 정말 곤욕이다. 매일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있다 보면 '내가 태어나길 밥 하려고 태어났나?' 싶기도 하다. 또 끊임없이 나오는 설거지는 얼마나 많은지, 싱크대 가득 쌓인 설거지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나마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은 그나마 조금 좋아하는 편이다. 매일 아침 청소기를 돌리는 것도,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세탁기, 건조기 사용하는 것도 괜찮다. 근데 또 빨래를 차곡차곡 개는 것은 또 어렵다.



그나마 요즘은 아침 겸 점심을 차리고, 간식 만들어 주고, 저녁 한 끼 정도 제대로 식사를 차리니 그나마 좀 나아졌나? 차라리 밖에서 일이라도 하면 돈이라도  수 있는데, 집에서 하는 일은 왠지 밥이나 축내는 것 같고 , 특히 집안일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별로 티도 안 나는 것 같다. 거기에 딱히 잘하지도 못하니 갈수록 문제가 생긴다.



아이가 신생 시절에는 몸은 조금 피곤했어도 , 아기가 워낙 작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었으니까 당연한 육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먹고 재우는 것이 매일 전쟁처럼 치러지자 육아가 괴로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특히 그때 하루 종일 밥을 먹이다 끝나는 날이 많았고,  낮잠, 밤잠 재우는 문제도 있었다. 아이가 조금 큰 지금은 이제 아이의 친구 문제, 그리고 친구로 얽힌 부모들, 혹은 아이의 교육문제까지 생겨나니 더욱 버겁고 힘들져만 간다.







또 나는 왜 이렇게 체력은 안 되는 건지... 하원한 아이에게 웃어주려면 종일 집에서 대기하다 아이를 맞이해야 한다. 내가 컨디션이 안 좋고, 조금만 피곤해도 아이에게 화를 내는 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으려면 그냥 집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내다가 (그렇다고 집에서 누워서 쉬거나, 노는 것도 아니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저녁 준비까지 마친 상태로) 아이를 맞이해야 그나마 하원 후 몇 시간 동안 아이와 잘 지낼 수 있다.  




나는 어쩌다 모든 것이 다 버거운 사람이 되었을까... 과연 체력 문제였을까?

쓸데없이 무거운 책임감 때문 아니었을까?












나에겐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아내'의 모습과 '엄마'의 모습이 있다. 성인남녀가 만나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들은 견고한 울타리 안에 있었고 나는 그 틀에서 벗어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혼한 여자는 가족에게 삼시세끼 따뜻한 밥을 해 먹여야 하고, 언제나 알뜰하게 살림해야 하고, 깨끗하게 빨래, 청소, 집안일 거기에 남편 내조까지 하고, 언제나 지고지순한 '아내'의 모습을 상상했다. 또한 엄마라면 언제나 예쁘고 화사하게, 아이에게 늘 웃어주며, 절대 화내지 않고, 원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들어주고, 맹모삼천지교! 내가 널 위해 못할 것이 무엇이 있으랴! 성장에 좋다는 값비싼 식재료는 물론, 네가 친구와 놀고 싶다면 언제나 놀이터에서 종일 대기하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너의 교육까지 내가 책임지겠어!라는 열정넘치는 엄마의 모습을 꿈꿧다.






완벽한 아내, 엄마가 되야겠다는 욕심이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갖고 살다 보니 솔직히 삶이 너무 버겁다. 겨우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으로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은데도, 왜 나는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조금 내려놓을까? 과연 괜찮을까? 정말?







남편은 언제나 나에게 아주 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죄책감이 생긴다. 나는 사실 너무 부족하기만 한 아내이자 엄마인데, 잘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듣기 거북하다. 매일 무거운 책임감이 나를 짓누른다. 사실 아무도 나에게 좋은 아내가 최고의 엄마가 되라고 강요한 적은 없는데 나 스스로가 옥죄고 있어 이것을 벗어날 수가 없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황은 없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준비하면 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거야. 준비하는 마음이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키워줄 수도 있다.


                                                                                                    가벼운 책임, 김신회,  036p




어차피 정답은 정해져 있다. 나는 영원히 완벽한 아내, 엄마가 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럴 바엔 나를 짓누르는 죄책감을 갖고 사는 게 아니라 차라리 가벼운 책임감으로 사는 것이 낫다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릿속에 만들어놓은 잘못된 허상을 조금씩 지워나가고 싶다.  특히 내 남은 인생이 살아온 인생보다 더 많기에 이제는 조금 가볍게 살아가고 싶다. 앞으로의 아내와 엄마로서의 나는 조금 자유로워질 테다.







이미지 출처 : 메인 - https://www.pinterest.co.kr/pin/52284045661776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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