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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an 13. 2022

난생처음 효도

아빠에게 끓여드린 미역국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의 생신상을 차렸다. 내 손으로 직접 장을 봐오고 손수 요리를 해서 아빠에게 생일을 차려 드린 것이다. 종종 엄마를 도와 아빠의 밥상을 같이 차리곤 했으나 내가 스스로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 식사를 차려드린 것은 처음이었다. 무려 '생신상'이다. 나는 대체 3n년동안 부모님 밥상 한번 차려드리지 않고 무엇을 하고 산 걸까?





아빠에게 끓여드리는 첫 미역국
 





생신상의 메뉴는 별것 없었다. 갈치, 미역국, 무생채, 야채볶음, 콩나물 무침 이것이 전부였다. 거기에 제주로 부모님께서 가져오신 김장김치를 꺼냈다. 김치와 함께 먹는 소고기 미역국이 더욱 빛을 발했다. 아빠는 딸이 처음으로 만들어 드린 미역국을 드시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지난달엔 시부모님께서 제주도에 오셨다. 마침 아버님 생신이어서 생신상을 차려드렸었다. 아마도 며느리라는 이유로 재작년 코로나 초창기, 외식을 하면 큰일 날 것 같은 그때도 생신상을 차렸다. 그리고 그전에 아이의 돌 즈음에, 집들이 겸해서 생신상을 한번 차렸었다. 처음 음식을 만들어 생신상을 차리는 그때의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남편과 케이크를 왜 아직도 안 사 왔느냐 그런 사소한 문제를 두고 싸웠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제주도로 이사한 후 마침 아버님 생신이 가까운 터라 세 번째로 아버님의 생신상을 차린 것이다. 뜻하지 않게 아버님께 생신상을 3번이나 차리는 동안 나는 친정부모님 잊고 살았다. 오히려 옛날 사람들 답게 내가 시아버지 생신상을 차려드렸다고 하니 너무 잘했다고 칭찬을 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되려 죄스러워졌다.  



그리고 남편에겐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을 꼬박 미역국을 끓여주었는데 아빠에게는 해드린 적이 없었다(엄마에겐  생신상은 아니지만 미역국은 끓여드린 것 같다.) 나는 그동안의 세월 동안 미역국도 한번 안 끓여드리고 뭘 했나 싶어서 죄책감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게 더 이상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이번에 생신상을 차려드렸던 것이다.  다행히도 최근 1년간 미역국을 제일 많이 끓여봤는데 오늘이 제일 맛있었다. 아빠가 내가 끓인 미역국 중에 제일 맛있는 것을 드실 수 있어서 기뻤다. (그런데 아빠는 싱겁다고 하셨다. 윽...)



우리가 먹는 한 끼 식사에 생선구이 혹은 불고기 그리고 미역국을 올려놓으면 그것이 생신상인데, 그게 뭐라고 이렇게 오랫동안 밥상을 차리지 못했나 모르겠다.





미역국이 뭐라고... 








아빠는 내가 어릴 때부터 늘 먹고살기가 바쁘신 분이다. 시간이 흘러 열심히 살아오신 결과 여유가 생겼어도 늘 바쁘신 삶을 살고 계신다. 그런 아빠가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제주도로 여행 오셨다. 그것도 2박 3일의 짧은 시간. 나는 생신상도 차려드리고, 부모님과 함께 가까운 곳을 여행하며 알찬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하필 그 기간 동안 제주 날씨는 흐리고 비가 오고 우박이 내리는 통에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래도 부모님께서는 오랜만에 딸과 사위 그리고 손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고 가셨다.



며칠이 지나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는 아주 가끔, 정말 가끔 전화를 하시는데 그때는 필시 술 드시고 내가 보고 싶어질 때나, 혹은 진짜 급한 할 말이 있으실 때다. 이날은 아마 약주를 드시고 내가 보고 싶어 지셨던 것 같다. 아빠는 "설날에 오니?" 하고 물었다. 나는 "가고 싶지만 그냥 가지 않을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알았다는 아빠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아빠가 제주로 또 놀러 오세요~" 는데 아빠는 역시 "바쁜데 또 어떻게 가~" 하셨다. 서울에서 살 때는 친정이 가까워서 자주 갔었는데 아무래도 제주로 이사오니 오가는 길이 어려워졌다.



방금 글을 쓰며 아빠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문득 효도라는 것이 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부모님 생각날 때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또는 명절이나 중요한 날 함께 만나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이 겨우 자식으로 할 수 있는 효도의 전부라는 생각. 언제나 부모님의 바람은 우리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일 테니 그냥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효도를 해도 충분할 것이다.



이번에 나는 미역국으로 아주 작은 효도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매년 이렇게 효도하고 살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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