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낭만

제주가 날 떠나라 하네

뭐가 이렇게 고칠게 많아!

by Blair

낭만이 가득한 제주, 이곳에 와서 산지도 9개월을 꽉 채웠다. 일 년 살이로 제주에 왔지만 일 년을 채우고서도 더 지낼지 아니면 이제 그만 다시 육지로 돌아갈지는 아직은 결정하지 못했다.


나는 이곳에서 밥을 아주 많이 해 먹고 또 해 먹고, 잡초를 뽑고 또 뽑았다. 생각이 많은 어느 날엔 잡초 뽑는 것이 괜찮은 날도 있었는데 보통의 날에는 잡초를 뽑기 싫은 마음이 더 컸다. 비가 온 다음 날이면 뻥 조금 보태서 아이 키만큼 자라난 잡초가 마당에 가득했다. 그러나 잡초가 자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일이었다.



문제는 제주의 집에서는 자연의 일과 더불어 또 다른 여러 일들이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세탁기에서 물이 흘러넘쳤던 것이 문제였다. 이 집에 들어올 때 내가 들고 온 세탁기를 설치할 곳이 없어서 기존에 설치된 작은 세탁기를 쓰게 되었다. 세탁기 옆엔 서랍장이 있는데 어느 날 바닥에 흥건히 고인 물을 발견했다. 고인 물의 흔적을 타고 가니 그 서랍장에서 흘러내린 물이었다.



서랍장을 닦고 다시 세탁기를 사용했다. 서랍 장안에 있던 습기제거제가 넘친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며칠 후 세탁기를 돌렸다 그리고 동시에 설거지를 했다. 지난 9개월 동안 세탁기를 돌리며 설거지를 했던 순간이 한 번도 없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세탁기와 싱크대 아래에서 물이 한가득 흘러 새어 나와있었다.



오 마이갓!!! 세탁기가 고장 났구나! 그래서 세탁기 as를 불렀는데, 세탁기 고장이 아니라고 했다. 고칠 게 없어서 그냥 가셨는데 아저씨는 다음 주에 마지막으로 근무하신다던데, 이거 진짜 세탁기 고장이라서 다시 as 받게 되면 어쩌나 생각했다.



이틀 후 세탁기를 돌리다가 컵과 식판을 가볍게 씻었는데 물이 또 흥건하게 나왔다. 세탁기 고장 맞는 거 같은데??!! as기사님께 다시 전화했지만 아니라고 했다. 배관이 막힌 것 같다 것 같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다. 조금 버텨보자. 설거지도 살살하고 배관 청소도 해보기로 했다. 잠깐 질끈 눈을 감고 이렇게 지나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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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차를 타고 가는데 브레이크 경고등이 켜졌다. 오 마이갓! 우리는 너무 놀랐지만 100m 앞이 아이 유치원이라 아이부터 하원 시켜 카센터에 가기로 했다. 곧바로 카센터에 갔는데 이유는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다시 브레이크에 경고등이 들어오면 상급 카센터로 가서 점검을 받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타이어가 많이 달았으니 타이어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타이어를 바꾸러 갔다. 4개의 타이어를 한 번에 다 바꾸기엔 비용이 조금 부담되었지만 그래도 안전을 위해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된 우리 차는 요즘 이런저런 속을 썩인다. 이번에 타이어를 바꾸며 훨 얼라이먼트 정비를 받게 되었는데 또 그것에도 문제가 생겨서 교체해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셨다. 10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차 아랫부분은 상당히 많이 부식되어 있었다. 그 부분을 본 정비사는 '바닷가 근처에 사세요?'라고 물어봤다. 우리는 산에 사는데? 암튼 오래되어 부식된 차를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 당장 차를 바꿀 순 없을 텐데...







문제는 다시 집에 와서 생겼다. 갑자기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싱크대의 온수도, 샤워하는 곳의 온수도, 세면대의 온수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라 어른인 우리는 찬물로 씻어도 되긴 하는데 아이를 씻길 때는 그래도 미지근하거나 따뜻한 물은 필요하다. 바로 보일러 as접수를 했다. 원래 이렇게 신속하게 as접수를 하지 않은데 어차피 고쳐야 할 것은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때 시간이 오후 6시를 넘긴 시각이었는데 다행히도 as접수가 되었다. 곧이어 as기사님께 전화가 왔는데 일단 보일러실의 상태를 봐야 하니 가보라고 했다.




뒤쪽에 위치한 보일러실은 등유를 채울 때 빼고는 갈 일이 없는데, 그곳에 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분수대가 그곳에 설치된 줄 알았다. 배관이 터졌다. 그 터진 배관 사이로 폭포처럼 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몇 시간이나 이런 상태로 있었을까? 오늘 as를 접수하지 않았더라면 as기사님께서 밸브 잠구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밤새도록 분수쇼를 감상해야 하지 않았을까?






터져나간 보일러 배관과 싱크대 앞 흥건한 바닥





제주에서 일 년 살이가 가까이 되어가니, 집에서도 밖에서도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난다. 마치 제주가 날 밀어내는 기분이다. 설마... 아니겠지. 그 와중에 눈치 없는 남편은 내 글을 슬쩍보고 가더니 그런다. '제주도라서 고장 나는 것은 아니야' 말이야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짧은 기간 연이어 생기는 이러한 문제들이 반갑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요즘은 창문으로 동물의 변 냄새가 솔솔 들어온다. 비가 온 날이면 그 냄새는 더 지독해지고 심해진다. 그리고 인근 집에서는 저녁이 되면 종종 무엇인가를 태우는데 그 태우는 냄새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오늘 하필 이런 내용을 모아서 쓰다 보니 역시 제주에서 사는 것도 쉽지 않다. 뭐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늘 피어있는 꽃과 새롭게 핀 봉숭아 꽃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서 예쁜 꽃도 귀여운 고양이도 만났고, 정원이 있는 이층 집에서 살아보는 로망도 이뤘다. 여름이 되며 부쩍부쩍 크던 상추는 우리에게 무한리필을 제공했다. 곧 심어놓은 오이도 호박도 열릴지도 모른다. 무더위를 뚫고 정원에 작게 피어난 봉숭아 꽃도 얼마나 작고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꽃자리 - 구상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어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서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그러던 중에 '꽃자리'라는 시를 보았다. 이 시를 읽고 있자니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곳이 꽃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는 여긴 가시방석이 아니다! 나는 지금 꽃자리에 앉아있다고 자꾸 세뇌시키는 중이다. 누가 알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꽃자리가 맘에 들어 일 년 살이가 이년 살이로 늘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메인 사진 : https://pin.it/WVOeO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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