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낭만

숨비소리

by Blair


마음이 답답해지던 어느 날 아침, 아이를 등원시키자마자 바다로 달려갔다. 제주에 사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언제든 원할 때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눈앞의 문제들에 사로잡혀 제주가 가진 이점들을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다.


오랜만에 직접 눈으로 본 바다는 청량하고 푸르렀다. 그래서 바다가 좋은 것 같다. 제주에서 와서도 산에 더 가까이에 살고 있어서 바다는 언제나 그립다. 바다 가까이로 다가가 앉아보았다. 철썩철썩 파도소리가 크게 들렸다. 잠시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이렇게 언제라도 올 수 있는. 바다 가까이 살 수 있어 참 행복하다 느꼈다.


먼바다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자꾸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어? 무슨 소리지'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파도소리만 들렸는데 다른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바다로 다가갔다. 그곳에서 바다 위에 떠있는 무엇인가를 보았다. 저게 뭐지? 하면서 한참을 바라봤다. 바다 위에 주황색 테왁이 떠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해녀였다. 10명 정도의 해녀들이 모여서 물아래, 위를 분주하게 오고 가며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었다.





주황색 테왁과 그 옆의 해녀들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이후로 내게는 그들의 다양한 숨소리, 휘파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내가 처음으로 들어본 '숨비소리'이다. 해녀들은 바닷속에 들어갔다 올라와서 숨비소리를 내었고, 종종 물을 뱉어내기도 했다. 지금은 여름이 되긴 했지만 그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상관없이 특히 여름을 제외하고 다른 계절엔 아침저녁으로는 물이 차가워서 물에 들어가기 힘들 텐데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해산물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듣던 대로 해녀들의 근처에는 테왁 외에는 별다른 보호장비나 산소통은 없었다.




제주에 오자마자 겨울이 되어 바다를 거의 간 적도 없고 차에서 드라이브하며 바다를 보거나, 바닷가를 산책한 적도 거의 없어 해녀를 볼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이렇게 우연히, 가까이에서 해녀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누군가가 숨비소리가 휘파람 소리 같다고 했는데, 내가 과연 그 소리를 들을 일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내 귓가에 들리는 그 소리는 숨비소리였다. 그것은 분명한 숨비소리였다. 정말 신비로운 소리였다.









우리들의 블루스, tvN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는 제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해녀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바다로 출근하고 퇴근했다. 열심히 바다에 들어가 전복, 문어, 소라 등등을 채취해왔다. 그중에 인상적이었던 드라마 속 장면이 있었다. 초보 해녀는 욕심을 부리며 오랫동안 바닷속에서 더 많은 해산물을 수확하려다 경력 해녀들에게 혼나기도 한다. 결국 어느 날 초보 해녀는 물질을 하다 그물에 발이 걸려 바닷속에 갇혀버렸다. 굉장히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왕삼춘의 도움으로 물밖로 나오긴 했지만 구해준 왕삼춘도 그물에 걸려 큰일이 날뻔했다. 물속에서 아무 보조 장치 없이 맨몸으로 일하는 해녀들은 이렇게 위험이 닥쳐오기도 한다. 해녀들은 가까운 가족, 같은 해녀 공동체의 친구들을 그러한 사고들로 인해 잃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한 몸처럼 여기며 해녀 공동체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제주 해녀들은 우리에게 강인한 여성이자 어머니로 인식된다. 그들은 껌껌한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위험을 견디며 묵묵히 물질을 한다. 그동안 책이나 영상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들을 만나다 직접적으로 보고 있자니 그들의 삶과 인생이 더욱 경이롭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해녀와 비교되어 스스로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비록 해녀가 될 수는 없겠지만 반면에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가? 내 마음속에서 수많은 감정이 요동쳤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정신 차리니 다시 파도소리에 숨비소리가 더해진다. 해녀들은 여전히 열심히 물질을 하고 있다. 그림 같은 바다와 그 속의 해녀들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내 마음속에 있던 나의 힘들고 답답한 마음은 숨비소리와 함께 바다에 흩어 사라졌다. 다 해녀님들 덕분이다.




이호테우 해변의 해녀 작품





제주에 와서 지내며 자주 가는 음식점이 생겼는데, 바로 해녀의 집이다. 제주에서 해녀의 집은 지역마다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오조 해녀의 집, 도두 해녀의 집, 표선 세화 해녀의 집, 애월 해녀의 집 등이 있고 이외에도 많은 해녀의 집이 있다.



그곳에 가면 해녀들이 잡은 신선한 해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주에서 신선한 해산물이 먹고 싶을 때면 그곳을 찾게 된다. 그곳에는 성게, 전복, 멍게, 소라 등으로 만든 요리가 일품이다. 해녀들의 수익도 창출해줄 수 있고, 우리도 신선한 해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전복죽, 해녀의 집에서





진하고 고소한 전복죽을 먹다 보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마음이 든다. 제주에서 해녀들을 만나고 그들이 잡은 해산물로 요리를 먹다 보니 여기서 그칠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해녀박물관에 다녀와야겠다. 그녀들이 궁금해진다.









메인 사진 : https://pin.it/3jgPs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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