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낭만

햇빛에 빨래를...

오늘을 놓치지 않고 빨래를 널어야 해

by Blair

내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뉴스에서 그랬다. 남부지역에서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핸드폰을 켜서 날씨 어플을 확인했다. 내일부터 다음 주까지 쭈욱 온통 구름과 비로 표시되어 있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동안 장마를 수도 없이 많이 겪어봤지만, 제주에서의 장마는 처음이라 기대가 되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얼마나 더 습할까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다.



장마가 오면 집이 더 습해질 테니, 그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이불의 햇빛 샤워이다. 오전엔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불을 널었다. 오후 3시가 다 된 시각이라 해가 지기 전까지는 4~5시간이 남았지만, 6시 이후까지 빨랫감을 널어본 결과 다시 축축해진 것을 생각할 때, 이제 3시간 정도밖에 햇빛 받을 시간이 없다. 앞으로 장마가 온다면 며칠이 넘도록 해가 뜨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당분간 이불을 햇빛에 말릴 수가 없으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나는 집에 있는 주요 이불을 걷어다가 널기 시작했다. 방에만 계속 있어 눅눅해진 이불이 보송보송해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현재 습도 70~80). 한참을 그렇게 이불을 햇빛 샤워시키고 난 후 걷어오는데 이불에서 나는 햇살 냄새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비가 오겠지? 하고 일어났다. 분명 오늘부터 장마라던데, 흐리겠지? 했는데 밖을 보니 오잉? 화창하다. 또 마음이 급해졌다. 이불을 햇빛에 널을 시간이 더 생겼군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불빨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12월부터 덮어온 겨울 오리털 이불을 이제 그만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은 어젯밤에 자는데 갑자기! 너무 더워서 덮고 잘 수가 없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잘 덮었는데, 겨울 내내 잘 덮고 자다가 5월 그리고 6월 초까지도 덮었던 그 이불을 이제는 덮고 잘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12월부터 6월 중순까지 오리털이 들어간 이불을 덮고 잔 것이다. 그동안은 덮을 때마다 포근하고 따뜻했는데 갑자기 하루아침 사이에 온도가 바뀌었다.



일단 겨울 이불의 오리털 부분을 분리해서 2층의 옥상에 널었다. 햇빛이 여전히 쨍쨍하길래(장마는커녕) 종일 널어두었다. 나중에 세탁소에 맡겨서 빨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분리된 나머지 이불을 빨기 시작했다. 본래 우리가 가진 세탁기는 이불빨래까지 되는 커다란 세탁기인데, 그것이 제주 집에 설치가 되지 않아서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작은 세탁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이불을 손수 빨아야 한다. 원래 같으면 이불을 빨래방에 가서 빨아야 하는데 매번 가지고 가서 세탁하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래서 내가 손세탁을 먼저 하고 그것을 세탁기에 넣어 탈수를 시킨 다음 건조기에 넣거나 야외에 말리는 생활을 하는 중이다.



처음에 이불 세탁을 할 때는 너무 고되고 지치는 일이었지만 이제 조금 요령이 생겼다. 그렇다고 쉬운 것은 아니지만 잠시 제주에 사는 동안 임시방편으로 쓸만하다. 원래는 지금보다 더 자주 이불 세탁을 했는데, 손세탁을 하게 되며 조금 덜 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햇살 좋은 날 빨래를 널자.





평소에는 건조기에 빨래를 돌려 말리는데 이렇게 햇살 좋은 날은 야외 건조한다. 여름 되며 햇빛량이 늘면서 아침에 빨래를 널어놓으면 점심 나절 벌써 빨래가 말라있다. 이불 빨래도 비슷했다. 일찍 세탁을 해서 널었더니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보송보송 잘 말라있다.


제주 주택생활을 하며 가장 잘했다 싶을 때는 꽤 소박한데, 그중에 하나가 야외에서 이불을 털 때와, 이불을 밖에 널을 수 있는 일이다. 재밌게도 햇빛이 쨍쨍하게 비치는 날이면 앞집도 뒷집도 모두 빨래가 널려있다. 그것을 보며 우린 아침에 일어나 다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 진다(다들 제주사람인데). 그리고 제주도는 특히 이맘때에 습도가 엄청나기 때문에 수시로 밖에 이불을 널어서 햇빛 샤워를 시켜야 한다. 어제는 차를 타고 어떤 빌라 창가에 가득하게 널려있는 이불을 봤다. 어떻게 보면 도심에서 유난이야 싶지만 나는 그 마음을 알 것만 같다.



아파트에서 살 때도 이불 빨래를 자주 했다. 내가 싫어하는 집안일은 정말 많은데, 좋아하는 집안일 딱 두 가지가 청소기 돌리기와 빨래하기이다. 그런데 이불을 건조기에 돌리지 않고 건조대에 올려놓고 말리던 것은 손에 꼽았다. 실내의 건조대에서는 이불이 바싹하게 마르기엔 한 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불 털기는 아파트 공동생활 민폐 중의 하나로 꼽히니 답답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다 내 마음대로 이불 털고, 이불 햇빛에 널고 싶을 때 너니 얼마나 속 시원 한지 모른다.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린 기분이랄까.



이불을 햇빛 샤워시키고 난 후 내 얼굴에서는 미소가 피어난다. 이게 그렇게 좋아할 일이야 싶지만, 생각보다 정말 만족감이 커서 그때마다 '정말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을 수가 없다.



특히 햇빛 샤워를 마치고 돌아온 이불에 코를 박고 햇빛 냄새를 맡는 일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른다.








이게 지난주의 일이다. 장마가 정말로 오던 날,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쳤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저녁이 되며 비가 그쳤다. 그 후 며칠은 장마 맞아?라는 생각이 들도록 햇빛이 들더니 지금 5일째 강풍이 심하게 불고 있다. 바람이 지난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한 강풍은 집에 있는 나무들을 다 뽑아버릴 기세다. 남편에게 "갑자기 제주도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부는 거 같아" 그랬는데 "원래 그랬어"라고 답한다. 심지어 남편이 며칠 전 서울 다녀오며 공항에 내렸는데, 비행기가 내려오다가 다시 올라갔단다. 오늘은 어떤 글을 보니 바람에 비까지 와서 비행기가 결항되었다는 말도 있다.



지금 바람 부는 수준이 바람이 제주를 날려버릴 기세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 집이 날아가면 어떻게 하지?" "그럴 일은 없어, 바람이 토네이도도 아니고" 그런데 바람이 얼마나 심하게 불면 아이가 그런 얘기를 할까? 지난번에는 해가 쨍한데 바람이 조금 불길래, 건조대에 이불을 널어서 2층에 놨더니 자꾸만 바람이 날려서 건조대가 쓰러졌다. 쓰러지던 건조대를 여러 번 일으키다가 햇빛에 이불 말리기를 포기했다.



어제와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씨다. 해가 쨍하고 떠 있는데 자꾸만 비가 흩뿌린다. 하늘에서 미스트를 뿌리는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고 그런데 아마 우산을 쓰면 바람에 우산이 뒤집혀 버리고 말 거다. 아무리 해가 쨍하다고 해도 이렇게 중간중간 비가 내리면 이불을 널수가 없다(당연한 소리) 또 밤에 장마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 그런지 밤새 비가 내려서 온 집안이 습하다. 축축해진 집에서 비와 바람이 그치길 바라며 빨리 해만 쨍하게 뜨길 기다린다.




'해만 떠봐라, 집에 있는 이불을 온통 밖으로 꺼내 널고 말 거다'라고 벼르고 있다. 햇빛이 뜨는 것을 기다리는 나는 요즘 같은 장마철이 정말 반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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