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낭만

그만 좀 괴롭혀!

벌레 벌레 벌레

by Blair

저녁이 되어 밖이 깜깜해졌다. 우리의 모습이 창밖으로 보일세라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때 블라인드에서 빨간 무언가가 뚝 떨어지며 내 팔뚝을 스쳐갔다.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입에서 득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맙소사! '지네다 지네!' 나를 스쳐 바닥으로 떨어진 그것은 수많은 발을 가진 빨간색의 지네였다.



안방에서 지네를 처음 본 것은 2주도 전의 일이다. 그날도 저녁에 아이와 자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빨간 실이 꿈틀꿈틀 움직였다. 너무 놀래서 소리 지르고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보니 그것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즈음 벌레를 너무 많이 봐서 조금만 움직이거나, 조금만 다르게 생겼거나, 뭐든 보면 '벌레'라고 생각할 때여서 '내가 잘 못 봤겠지'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더라도 곧 죽어 사라지겠거니... 혹은 시간을 줄 테니 제발 방에 있지 말고 나가길 바랬다. 그런데 그것은 며칠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쌩쌩이 살아 있었고, 바닥에 있던 것이 움직여 블라인드까지 기어 올라갔고, 가장 싫었던 것은 처음 본 그날과 다르게 다리도 생기고, 몸도 제법 자라서 지네 본연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으아아아악~)



지네는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솔직히 지난번엔 내 눈이 헛것을 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인즉슨 아무리 플래시를 켜고 침대 바닥을 봐도 지네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블라인드에서 떨어진 것은 지네가 확실하다. 내 몸을 스쳤기 때문에 더 생생하다. 지독한 녀석! 아직도 죽지 않고 이곳에 살아있다니. '정말 끔찍하다' 대체 뭘 먹고 그렇게 커버린 거야...



결국 이번엔 침대 바닥으로 들어가 버린 지네를 찾기 위해, 안방에 있는 킹 사이즈의 침대와 싱글 사이의 침대를 분리해서 들어 올렸다. 그때 시간이 이미 9시가 넘고 10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먼저 킹 사이즈의 침대를 매트리스와 분리했는데 그 매트리스는 얼마나 무겁고 거대하던지 그리고 아래 침대 프레임도 어찌나 무겁던지, 게다가 2개의 매트리스로 된 싱글 침대마저 옮기고 있자니, 이걸 꼭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네와 더불어 살아볼까?



싱글 침대의 첫 번째 매트리스를 꺼내고 두 번째 매트리스를 들어 올렸다. 그때 발견할 수 있었다. 동그랗게 말려있는 지네를!!!! 곧바로 그것을 제거했다. 으~ 징그러... 더불어 안방에 매트리스를 다 올린 김에 바닥청소도 함께 했다. 지네보다 먼지들이 더 많았다. 지네가 그곳에서 오래 살아남은 게 더 신기할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본 지네만 몇 마리야. 죽어있는 지네, 살아있는 지네... 평생 볼 지네를 이곳에서 다 보는 것 같다. 지네를 이렇게 자주 보게 될 줄이야. 자연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지네가 나타난 밤, 한 시간 전에는 '거미'를 잡았다. 어젯밤에도, 그제 밤에도 잡았다. 매일 집안으로 출몰하는 그것은 거미이기도 하고, 날개미, 뚱뚱한 개미, 이름 모를 벌레들이다. 창문 틈 사이로 죽어있는 벌레를 보다 보면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벌레가 있었는데 내가 겨우 아는 것은 바퀴벌레, 거미, 개미, 콩벌레, 정도였다니 거짓말 같다.



정원에서 잡초를 뽑다 보면 수많은 종류의 벌레를 만난다. 잡초를 하나 뽑아 올릴 때마다 그 사이에서는 벌레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시간이 조금 흐르다 보니 눈을 질끈 감고, 벌레를 무시한 채 잡초를 뽑는 지경에 이르렀다. 잡초를 뽑다 보면 벌이 윙윙 날아다니고 모기가 가까이 다가온다. 그래도 벌의 윙윙 거리는 소리가 조금 무섭긴 한데 당한 적은 없고, 문제는 모기에게는 그냥 사정없이 물린다. 엊그제는 벌레 기피제도 뿌리지 않고 잡초를 뽑다가 16방을 물렸다. 다리 가득 모기에 물려서 참혹하다. 너무 간지럽다. 오늘 앞집 아이가 놀러 와 우리 아이와 집 앞에 잠깐 서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잠깐 사이에 아이의 다리에는 6개의 모기 상처가 생겼다.



제주에 오면서 가장 예상한 것이 '벌레'이기는 했다. 이미 제주에 살고 있는 남편의 지인이 제일 먼저 얘기해준 것이 벌레와의 사투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먹고 왔다. 아무리 마음을 먹고 왔어도 벌레가 귀엽다고는 못하겠다.



처음에 제주에 왔을 때는 벌레를 절대 잡지 못했다(원래 잡지 못했던 사람) 크기가 작든 크든 벌레가 집안에 출몰하면 남편부터 불러 젖혔다. 2층이 주 생활권인 남편이 나타나 벌레를 잡고 나면 조금 민망해졌다. 차라리 거대하고 무서운 벌레이면 남편을 불러도 괜찮을 텐데 작고 귀여운 측에 속하는 벌레가 나타나면 어느 순간 남편을 불러 잡기에도 민망한 지경이 왔다(벌레는 주기적으로 꾸준히 출몰했다) 그렇게 벌레를 잡기 시작했다. 현재는 매일 벌레를 잡고 또 잡고 이제 지네도 파리채로 잡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는데, 죽은 벌레 시체를 처리하는 것은 또 어렵다는 사실이다. 휴...








지금 이 글은 고작 지네 한 마리가 블라인드에서 떨어져서 팔을 스쳐나갔기 때문에 쓴 글이 아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틀 전이었다. 잠자기 전에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간 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왔다. 화장실에는 거대한 거미가 있다고 했다. 우린 아이가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생각하는 거미라고 해봤자 손톱만 하겠지... 솔직히 이곳에서 그동안 보아온 거미의 종류만 해도 꽤 다양하기 때문에 우린 놀라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화장실 문을 열어 거미의 모습을 확인한 직후 우린 아이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거미는 족히 내 손만 한 사이즈였다. 내 손은 보통의 성인 여자보다 작긴 한데... 그래도 손을 쫙 피었을 때 만한 사이즈의 거미라. 한국에도 이렇게 큰 거미가 있다는 거야?!! 이 정도 느낌은 호주에서 봤다는 그 거대한 거미 수준이었다. 말도 안 돼. 저런 거미가 실존하다니. 그것도 가정집에 저렇게 태연히 들어와 있다니. 정말 컸다. 보고 또 봐도 컸다. 저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제였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처리했다. 사활을 다투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방금 이 글에 거미 사진을 추가하려고 호주 거미를 검색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목격한 거미는 분명 크긴 하지만 호주 거미보다 훨씬 작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그러나 호주 거미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지 한국에서 보면 100% 놀랄 정도의 거대한 사이즈는 맞았다.





거미 사진 찾다가 발견한 happy face spider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다. 처음 제주에 살려고 집을 구하러 여행 겸해서 제주를 방문했다. 나는 그때 한옥으로 된 펜션을 숙소로 잡았었다.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아이가 너무 놀라며 일어났다. 왜냐고 묻자 저기 벌레가 있다고 그랬다(우리 아이는 귀도 밝고, 눈도 밝다) 그 벌레는 못 볼 수 없는 크기였다. 아이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라고 말해야 할까. 하하. 나무벌레라고 부르는 그 벌레는 바퀴벌레와 너무 비슷하게 생겼는데 사이즈가 얼마나 크던지... 그 숙소에서 밤새 뜬눈으로 지새웠던 기억이 있다.



오늘 지네와 사투에서 벌였다. 그리고 이겼다. 어떻게 보면 그 벌레에게 인간의 크기가 훨씬 크고 무서운 존재일 텐데, 그 거대한 인간인 나는 이것이 뭐라고 이렇게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 반갑지는 않다는 사실. 이제 겨우 여름 시작이다. 그동안 만난 벌레보다 아마 앞으로 몇 달 동안 만나게 될 벌레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집에 좀 그만 들어와 줘. 제발.








*이 글에서는 곤충과 벌레를 전혀 구분하지 않고 벌레로 통칭해서 사용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메인 사진 : https://pin.it/okKooCt

본문 사진 : https://pin.it/4 U0 FAj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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