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낭만

바다멍 같이 할래요?

by Blair

카페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 바다를 보았다. 내 눈길이 닿은 바다에는, 바다 가까이에 서서 얼굴에 꽃받침을 만들며, 때때로 몸을 비비 꼬며 셀프사진을 찰칵찰칵 찍는 사람이 보였다. 혼자 온 걸까? 삼각대로 찍는 것일까? 했는데 뒤이어 친구가 보였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그녀들의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내가 열 살쯤 되었을까. 그때 첫 여자 친척동생이 생겼다. 삼촌은 첫째와 꽤 터울이 지는 둘째를 낳았다. 그리고 둘째의 이름을 바다라고 지었다. 그 당시에도 지금도 삼촌의 취미는 낚시이다. 그래도 그렇지 딸 이름을 바다로 짓는 사람이 어딨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삼촌이 왜 딸 이름을 바다로 지었을까 궁금했다. 왜 많고 많은 이름 중에 그 이름이었을까 생각했다. 그 후로 이십 년이 훌쩍 지나 제주에 살면서 그 답을 알게 되었다.



그저 바다라서 그랬겠지.

이만큼 아름다우니 그랬겠다.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바다라서 그랬을까.

언제든 그리워지는 곳이라 그랬겠다.

이제야 답을 찾게 되었다.









제주에 살면서 내가 바다를 이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다가 정말 좋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만의 제한이 있다. 바다를 보는 것은 좋은데 모래사장을 걷는 낭만은 없다. 뜨거운 태양볕 아래서 모래놀이를 하는 것은 정말 싫다. 그 대신 밤바다에 앉아 바다를 보는 낭만은 있다. 밤바다에 앉아 바다를 보던 그날, 두 손 잡고 바닷소리를 들으며 걷던 바다가 오래도록 생각난다.



특히 가장 좋은 것은 바닷가 가까이 창문이 넓은 카페에 앉아 바다를 보는 일이다. 커피 한 모금에 바다 한번 바라보는 것이 제일 좋다. 바다가까이 사니 매주마다 일부러 바다 앞의 카페를 찾는다. 언제든 마음먹을 때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제주가 정말 정말 좋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가 좋아요





사실 제주 우리 집을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는 조금 멀지만 바다가 보이기 때문에 선택했는데 문제는 내가 집에 있을 때 바다를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2층의 방에서도 바다가 보이고, 테라스에서도 바다가 보이는데도 말이다. 어제 문득 2층 테라스 문을 열며 깨달았다. 우리 집 2층에는 두 개의 테라스가 있는데 그중에 바다가 보이는 한 개의 테라스 문은 1년 동안 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잠겨있는 문인줄 알았네.



이제라도 집에서 열심히 바다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떠나면 우리 집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내 인생 다시없을 수도 있으니까.



매일 외출할 때면 바다를 볼 수 있다. 집에서 조금만 내려가 면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데 특히 날씨가 좋은 날엔 더 멀리 바다까지 훤하게 볼 수가 있다. 그때가 제일 좋다. 가슴이 확 트이는 순간이다. 요즘 같이 미세먼지에 뒤덮여 지내다가 드디어 미세먼지가 걷힌 오늘 같은 화창한 날에는 바다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아침부터 바다를 보며 설레는 그 순간.



다들 이 맛에 바다가까이에 사는 거겠지?








어느 날 모슬포에 갔다가 배가 많이 정박된 항구를 만났다. 제주를 떠나기 전 배를 타고 출항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낮이라면 아이랑 함께 배를 타고 낚시하러 가보면 좋겠다 생각을 한다. 밤낚시는 어떨까? 왠지 어른들만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때로는 밤바다에 떠있는 배를 보면서 지금 이 시간 저 배에 타고 있으면 무슨 기분이 들까? 어떤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런 상상을 하다가 역시 깜깜한 바다는 초보 낚시꾼에게는 너무 무섭지 않을까? 고민을 해보기도 한다.



제주에 살 때 갈치 낚시를 한번 가보고 싶다. 작년 겨울 어느 날 아빠와 오빠가 함께 갔던 갈치 낚시 사진이 떠오른다. 기다란 갈치를 손에 들고 찍은 사진을 보았다.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날씨가 추워서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길고 큰 갈치를 잡을 수 있다면 추위 따위는 상관없겠지? 동문시장에 줄줄이 누워있는 갈치... 나도 꼭 한번 잡아보고 싶다.



바다를 바라보다가 바다에서 사진 찍는 사람을 바라보다가 바다에서 낚시하는 상상까지 하다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다멍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바다멍은 나에게 무리였을까?



그래도 나는 불멍보다 바다멍을 훨씬 좋다. 제주에 살 때 실컷 바다멍을 해둬야겠다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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